[기고/김주영]전력 민영화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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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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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을 분할하여 경쟁을 도입한다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시작된 지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계획은 한전에서 발전을 우선 분할하고 배전까지 분할을 완료해 궁극적으로 전 산업을 민영화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관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1년 4월 발전부문이 수력원자력과 화력 등 모두 6개 회사로 분할됐다. 배전부문의 분할은 2004년 노사정위원회의 1년에 걸친 연구 끝에 요금폭등과 공급불안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유로 중단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배전 분할 중단 직후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전력산업의 불확실성 제거로 한전의 신용등급을 대한민국보다 한 단계 높였다.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던 한국의 고도성장은 1961년 전력 3사의 통합 이후 출범한 한전의 노동자가 전력보국이라는 기치 아래 값 싸고 질 좋은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해 희생한 결과다. 전력 노동자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전자와 포스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세계 어느 나라도 전력산업을 국가가 독점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발언이다. 한때 영국식 구조 개편을 추진했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구조 개편은 실패로 끝났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전력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이는 주정부의 재정파탄으로까지 이어졌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급진적 영국식 민영화로 전기요금이 구조 개편 시행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3배 치솟았다. 구조 개편의 원조인 영국의 주요 전력회사는 현재 거의 모두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구조 개편의 목적은 국가마다 달랐다. 영국과 캐나다 온타리오는 노후 발전기 퇴출이 주된 목적이었고 캘리포니아는 전기요금 인하를 원했던 반면, 금융위기를 맞은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는 기간산업 해외 매각을 통한 국가부채 해결이 급선무였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자산 해외 매각과 신규투자 촉진을 이유로 구조 개편을 시작했지만 2004년 노사정위원회는 기대편익이 불확실하고 요금폭등의 위험성이 높아 구조 개편을 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력산업 정책 방향과 관련한 최근 연구용역에서 구조 개편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연구 과정에 구조 개편을 맹목적으로 추진하자는 연구자가 다수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구조 개편 반대론자는 전력산업의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이유로 분할된 전력산업의 재통합을 주장했었다.

KDI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산업 재통합 불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 한전이 단일 구매하던 발전연료를 분할된 5개 화력발전회사가 개별로 구매하는 것이 더 싸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전회사 사이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가격이 싼 저질탄 구매를 늘림에 따라 나온 단기적인 결과였다. 저질탄 사용이 늘어나면서 발전기 운영과 수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현장의 우려는 아예 묵살됐다.

전력산업은 나라에 따라 모습과 제도가 다르다. 발전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가 거의 모두 실패로 끝난 다른 나라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따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무엇을 위한 구조 개편인지,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지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영 전국전력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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