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쿠미'가 일깨워준 우월과 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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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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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한국 이룩하려면 '인종편견'부터 버려야

지난 11일 ‘자쿠미(ZAKUMI)’와 함께 남아공월드컵이 화려한 개막식을 시점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줄 축구공 ‘자블라니’가 남아프리카의 대지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의 왕국답게 정열적인 아프리카의 힘을 선사하듯 말이다.

또 한 가지 의미 있게 시청한 것은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27년간 감옥생활을 한 뒤, 대통령으로 선출돼 지난 1994년부터 99년까지 임기 5년을 마친 만델라(91세) 전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개최국 남아공 자국민들은 물론 주변국선수들까지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승리의 기운을 느낀다는 외신을 접한 필자는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유는 생물학적 요인으로 결정되는 본인의 피부 또한 유색인종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왠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인종차별이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를 언급할 것 없이 아주 가까운 예로,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흑인, 동남아인이 앉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이다.

실제로 피부색이 하얀 외국인이, 지나가는 내국인에게 길을 물어 보았더니 친절을 베푼 반면 피부색이 짙은 동남아인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을 경우, 시선을 회피하는 등 그 반응도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인 ‘백인우월’, ‘유색인열등’이라는 편견이 우리에게 없다고 부인하기 어렵다는 단적인 증거다.

현재 국내에는 내국인을 비롯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물론 다문화가정, 혼혈아들로 어우러져 이웃으로 공존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시점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이 국제결혼의 주류를 이뤘던 것과는 달리, 199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인 남성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만 보아도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총 152개국 25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4%를 차지한다. 1998년 5만 1000여명에 불과했던 서울 거주 외국인이 불과 10여년 새 5배로 늘어 다문화 가정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국내풍경이 된 셈이다. 현재 이들은 대한민국의 단일민족이라는 체제에 짓눌려 억압과 차별과 따가운 눈총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외국의 사례로 북유럽의 강소국이라 일컫는 스웨덴의 경우, 인구 900만 명의 20%가 이주민으로서 주류사회에 진입하여 공무원, 정책입안자 등 핵심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인으로 구성된 ‘멜팅포트(melting pot: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르는 미국의 경우는 각종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진들이 백인, 흑인, 라틴계, 동양인의 얼굴로 게재되지 않으면 인종차별 교과서로 분류돼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호주 또한 국가화합의 날을 제정하여 민족 개념이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개념으로 이주민들을 포용하고 있다.

그 외, 얼마 전 화려하게 막을 내린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확인했듯이 캐나다는 일찍부터 다인종, 다문화 정책을 받아들여 ‘멜팅포트’라는 단일민족국가의 이론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샐러드 볼 이론(salad bowl theory)라는 다민족국가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와 ‘얼마나 어리고 예쁜 여자냐’. 즉 가정의 시작이 대부분 우리나라 보다 약소국을 선정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매매혼방식의 국제결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TV프로그램에서 조차도 중국·동남아 등을 무심코 비하 발언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그대로 보고 배우며 성인이 되어서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대우는 고스란히 그 후대로 전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피부색에 상관없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 사람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도 차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교육은 중점을 두고 교육하고 있지만,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국가에 대한 사회문화 교육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멀리하게 되는 것처럼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편견을 갖게 되고 배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자하는 말은 자연은 무한대의 다양성을 인간에게 보여주고 있다. 식물도 동물도 제각기 다르다. 또 같은 종에서도 다양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묘한 경계 속에서 조화롭게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인간만이 편을 가르고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각자 특수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기준으로 우등과 열등을 나눌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모양새가 다르다고 해서 한 명은 사람이고 한 명은 동물인가? 또 꽃의 색과 향기가 다르다고 해서 꽃이 아닌가? 이렇든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풍기는 체취가 다르다고 해서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미개한 행동에 불과하며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라는 얘기다.

한편 옛말에 한 해를 준비하는 사람은 씨앗을 뿌리고 10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준비하자면 사람을 키운다는 얘기가 있다. 2세를 키우고 가르치는 일을 흔히 백년대계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종편견에 대한 우리의 2세 교육을 생각해보자. 부끄러울 정도로 아이들 앞에서 외국인을 비하하는 특정 용어나 어투를 쓰고 있지 않은가. 교육이 사람의 인식과 태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교육을 서서히 확대시켜 나간다면 국제사회에 걸 맞는 인식을 갖춘 글로벌한국 사회로 변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버나딘대학교 종교철학명예박사 / 동방대학원대학교 노재환 전임교수

<본 자료는 정보제공을 위한 보도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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