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O2뮤직/커버스토리] 뉴밀레니엄 아이콘 이정현, 안타까운 그녀에게 거는 기대
더보기

[O2뮤직/커버스토리] 뉴밀레니엄 아이콘 이정현, 안타까운 그녀에게 거는 기대

동아일보입력 2010-05-31 03:13수정 2011-01-06 17:31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 파격적 등장, 신비한 이미지는 시대의 상징
● 마케팅은 뒤지고 컨셉트는 앞선 '어색한' 존재
● 눈부신 음악적 성숙 VS 안타까운 대중 반응
가수로 변신해 '와 '바꿔'로 뉴밀레니엄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이정현은 그러나 그 이후 본연의 이미지는 완전히 휘발되고 코스튬 플레어이어에 가깝다는 인상을 남겼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가수 이정현을 생각하면 늘 세기말이 함께 떠오른다. 그가 가수로 막 데뷔해 '와'로 현상적 인기를 누리던 때다. 100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송년 특집프로그램에서도 당연히 이정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불안해하던 때다. Y2K 괴담이 전 세계에 걸쳐 돌았다. 국내에선 IMF 외환위기 여파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1000년 만에 연도의 맨 앞 숫자가 바뀌던 시점이었지만, 그에 막연한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거리는 신비스런 복장으로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끼고 무대에 등장해 신들린 듯 춤추며 주문처럼 랩을 읊조리던 그의 모습은, 마치 다가올 2000년대를 향한 주술의식처럼도 여겨졌다. 그 순간, 이정현은 시대의 상징 그 자체였다.

■ 신비스럽고 '괴기'스런 소녀의 등장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0년, 어느덧 우리나이 서른하나가 된 이정현은 7집 앨범을 발표했다. 신곡 '수상한 남자'를 들고 나와 뮤직비디오 선정성 논란까지 일으키며 과감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사실상 거의 이목을 못 끌고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어색한 일은 아니다. 여성 댄스가수가 10년 이상 장수한다는 것 자체가 이변에 속한다. 그 나이까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올 수 있는 가수는 그 중에서도 손으로 꼽는다.

그럼에도 이정현은 더 이야기해볼 거리를 남긴다. 그녀의 인기쇠락은 한국 대중음악산업에 있어 하나의 지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음악을 둘러싼 이미지가 음악 자체를 지배해버리는 시대, 이미지마케팅이 가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주요기사

이정현은 애초 배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것도 아주 폭발적인 데뷔였다. 1996년 3000대1의 경쟁을 뚫고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5·18 당시 어머니를 잃고 실성한 채 떠도는 소녀 역이었다. 불과 17세의 나이로 광기어린 연기를 펼치며 정사 신까지 소화해내 미디어의 집중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는 흥행에 대성공했고, 그해 그녀는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이후 한참동안 이정현은 '잠잠' 했다.' MBC '일곱 개의 숟가락', KBS '야망의 전설' 등의 드라마와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 등에 출연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러나 존재감은 여전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신비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 영화주간지 인터뷰 중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답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대 소녀에게서 나오기 힘든 멘트였다. 성숙한 소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소녀, 그늘진 소녀의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그러던 1999년 이정현은 가수로 새롭게 등장해 빅뱅을 일으켰다. 모든 컨셉트가 대중이 그녀에게 기대했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귀기 서린 메이크업과 의상, 광적인 퍼포먼스, 인트로에 등장하는 기괴한 외계어, 그리고 '신세대적'이라 포장된 테크노 팝. 애초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커져버려 배우보다는 가수 역할이 더 잘 어울린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세를 타고 여전사 이미지로 분한 '바꿔'까지 대히트시키며 1999년 말~2000년 초 격변의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세 불거졌다. 본래 이정현은 남성보다 여성층에 인기가 있었다. 깡마른 몸에 과격한 퍼포먼스, 흡사 마녀스런 분위기가 신비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진 지면 인터뷰 외에 별달리 실체가 노출될 일이 없었지만 가수 역할을 맡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의 본모습이 자주 드러났기 때문이다.

데뷔작 \'꽃잎\'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친 이정현. 10대 소녀답지 않은 신비롭고 성숙한 언행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남다른 카리스마와 소녀적 실체의 괴리

이정현은 일단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면 세칭 '분위기가 깼다'. 가녀린 하이톤으로 애교스럽게 "안녕하세요~ 정현이예요~"를 외쳐대는 그녀와 무대 속 그녀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다 막상 2집이 등장하고 타이틀곡 '줄래'가 공개되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줄래'에서 이정현은 신비스러운 마녀적 여성, 여전사가 아니었다. 바비 인형 의상을 입고나와 깜찍한 춤을 추며 귀여운 소녀풍 노래를 불렀다.

어찌 보면 이쪽이 이정현 본인의 실체와 일치하는 컨셉트이긴 했다. 문제는 대중이 사랑한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지나친 애교 모드는 이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정현 말투'가 연예인들 사이에서 성대모사 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귀여운 소녀' 노선을 끝까지 안고 갔고 "내 꿈 꿔~"라는 멘트를 유행시킨 휴대폰 CF에서도 같은 이미지를 고수했다. 이어 2001년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 SBS '아름다운 날들'에서도 사실상 유사한 캐릭터로 등장, '안 팔리는 이미지'를 아예 자기의 메인 이미지로 굳혀버렸다.

이후 이정현의 행보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영화 '하피'에선 다시 '와' 때의 이미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연속성이 깨진 이미지는 되살리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자꾸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애썼고, '너'의 이집트 무녀 컨셉트, '미쳐'의 마술사 컨셉트, '아리아리'의 밀림 컨셉트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어느덧 이정현 본연의 이미지는 완전히 휘발돼버리고, 코스튬 플레이어에 가깝다는 인상만 남게 됐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모멘텀을 잃고, 인기쇠락의 길을 차분히 걸어갔다.

그리고 지금, 가수 데뷔 11년차를 맞이한 이정현을 돌아보자. 그녀의 스타파워는 사실상 바닥을 쳤다. 뭘 해도 크게 주목받질 못한다. 아이돌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연령도 초과한지 오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건, 음악적으로는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10여년이 넘는 가수 커리어에서 단 한 번도 일렉트로니카 베이스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 정도 연속성을 보여주는 아이돌은 극히 드물다. 백지영처럼 댄스음악을 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발라드로 전향하는 전형을 따르지 않고 있다. 발라드 트랙 자체를 이번 7집에서야 처음 넣었으며, 그나마 싱글커트조차 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정현' 하면 바로 '일렉트로니카'를 떠올릴 정도로 상징성을 얻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음악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발표된 EP(미니앨범), 'Avaholic'부터 특히 그렇다. 'Avaholic'은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대중호응이 떨어져 '비운의 수작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빅스테레오 사운드를 바탕으로 일렉트로니카 재료로 가능한 흥미로운 지점들을 완성도 높게 짚어줬다.

이번 7집도 그런 음악적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운드 퀄리티 면에서 최상급 댄스 음반으로 등장했다. 인상적인 트랙들이 많고, 특유의 하이톤을 점차 잘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최소한 엄정화 정도의 성장과 진지함은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7집 앨범을 발표한 이정현은 음악적 성장에도 불구, 대중의 박한 평가를 받았다. 늘 앞선 컨셉트를 선보인 그와 대중의 괴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사진제공 에이바필름&엔터테인먼트


■ 음악적 진화에도 대중 평가 기대 이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현은 여전히 대중으로부터 그 정도 위상을 부여받지도, 호응을 얻지도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커리어 관리의 문제, 이미지메이킹 과정에서 계속 큰 오류를 범했던 탓이다. 이미지 차원에서 스타성이 추락하면 음악조차 제대로 안 들리는 게 현실이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조차 못 생겼다고 안 뽑아주는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딱히 대중 탓을 할 것도 못된다. 이정현은 바로 그런 현실을 알려주는 지표가 돼버렸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정현은 이미지메이킹뿐 아니라 위상 면에서도 어딘지 늘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 1차 붐에 편승해 등장했지만 당시에도 어딘지 아이돌이라 규정키 어려운 면이 있었다. 반면 음악적 궤도가 명확해진 지금도 딱히 아티스트라 규정키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정현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라는 독특한 컨셉트의 초기 버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뚜렷한 음악적 일관성을 지니고 음악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만, 동시에 아이돌적 행보도 포기하지 않는 컨셉트. 빅뱅, 2NE1 등이 선택해 대성공을 거둔 바로 그 컨셉트 말이다.

불행히도 이정현의 전성기는 대중이 그런 컨셉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고, 그때는 그런 컨셉트를 포장할 만한 마케팅 툴마저 전무했다. 그래서 이정현은 늘 어색한 존재, 시장을 겉도는 존재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부유감이 장기간 지속되자 바로 조로(早老)로 이어졌다고 봐야한다. 결국 이정현의 인기쇠락은 마케팅 측면에서 뒤처지고, 반대로 컨셉트 측면에서는 너무 앞서나갔기에 벌어진 복합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정현 커리어가 완전히 외통수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이정현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다시 영화로 복귀하고 싶다"며 "빠르면 올 하반기에 좋은 영화로 컴백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엔 중국 CCTV 사극 '공자'를 촬영하기도 했다. 좋은 방향 전환이다. 이정현에겐 늘 기본재능을 갖춘 배우라는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가수로서 앞이 턱 막혀버린 현 시점, 배우로서 자기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도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난 뒤에야 레이디 가가와의 '특별한 인연'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배우 역할을 통해 대중의 편견과 환멸을 씻고 난 뒤, 예정대로 레이디 가가의 도움을 통해 7집의 미국 리믹스 앨범이 나오게 되면, '사대적 마케팅'의 힘을 통해 이정현 음악이 제대로 전달될 통로가 뚫릴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부활 시나리오다.

그래봤자 어차피 서른을 넘긴 나이든 아이콘. 잘 풀려봤자 현재의 엄정화 정도 위상이 한계가 아니겠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 편이 더 현실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1999년의 막바지, 다가올 새천년에 공포와 불안, 분노, 좌절,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을 함께 하며 이정현의 1000년대 마지막 무대를 지켜보던 대중이라면, 이정현이라는 존재에 모두 아릿한 애착 하나 정도는 여전히 쥐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그녀의 부활을 분명 반가워할 이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노련한 연기자에 진지한 뮤지션인 엄정화가 정작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는 건 이래서 늘 유리한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