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검프’ 박시후 “‘시후앓이’ 오래 앓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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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7일 1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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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사진=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아, 일주일마다 우리를 울고 웃겼던 '서변'이 갔네."

20일 오후 10시 서울 서초구 시너스 극장, SBS 수목드라마 '검사 프린세스'(극본 소현경 연출 진혁, 이하 검프)의 마지막 회를 보던 언니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날 검프에서 매력적인 서인후 변호사(서변) 역을 맡았던 박시후(32)와 팬 200여 명은 한 상영관을 빌려 '단관 행사'를 벌였다. 좋아하는 배우를 직접 본 기쁨도 잠시,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듯 팬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어떤 팬들은 박시후 한번 보겠다고 경남 창원,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심지어 중국 베이징, 영국에서 온 여성도 있었다. 골목길에서 짝사랑하는 오빠 기다리는 여학생 심정이었는지 박시후가 상영관 문에 들어서자 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이른바 '서변앓이' 열풍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서변앓이는 서 변호사 때문에 앓는 병이라는 뜻에서 나온 신조어다. 박시후는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우고 오늘도 4시까지 마지막 장면을 찍었는데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기운이 난다"며 "드라마를 2회 정도 더 연장했으면 좋았을 걸 아쉽다"고 팬들의 환대에 화답했다.

기자가 박시후와 본격적인 얘기를 나눈 것은 다음날인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웃을 때는 중저음으로 "아하하"하고, 말할 때는 장난기 서린 듯 비음 살짝 섞인 목소리로 느릿느릿 하는 충청도 남자였다.



▶ "마혜리와 키스 신, 이 악물고 했다"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박시후는 "행복하다. 아하하. 시청률 면에서는 전 작품에 못 미치는데 반응은 그 이상이라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서변앓이 중인 시청자들은 그가 출연했던 '일지매', '가문의 영광'을 다시 찾아보며 상처를 달래고 있다. 박시후는 "예전 작품을 보면 서변앓이를 넘어 '시후앓이'를 하지 않을까?"라며 "부디 오래오래 앓아줬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극중 서 변호사는 살인 누명을 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원수의 딸인 마혜리 검사(김소연 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지만, 밝고 순수한 혜리와 사랑에 빠져 일이 꼬여버린다. 혜리에게 다가가던 서 변호사는 능청스러우면서도 자상하고 터프하다. 극 후반부 혜리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던 서 변호사는 냉혈한 같으면서도 순정파의 모습을 보인다. 한 캐릭터에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의 성격을 다 쏟아 부었으니, 여심이 흔들릴 수밖에. 박시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에 서 변호사의 매력은 배가됐다.

"여성들이 서 변호사에 반할 만하죠. 감싸주고 챙겨주고. 서 변호사와 비슷하냐고요? 저도 사귀는 여자에게 잘해요. 굶고 있으면 도시락 싸주고, 아프면 간호하고, 장난도 잘 치고, 한 사람과 길게 사귀고…."

폭발적 반응을 얻었던 혜리와의 입맞춤에 대해선 "예전 드라마에도 키스 신이 있었는데 너무 못한다는 말을 들어서 이번엔 이를 악물고 했다"고 설명했다.

혜리에게 다가갈 때 나오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술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한다.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데 술 마시고 친해지다 보면 굉장히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요. 느낌이 살겠다 싶어서 집에서 와인 한잔을 걸치면서 대본 연습을 했어요."

▶ 이상형? 긴 생머리에 첫 느낌이 좋은 여자

그는 4년 전 마지막 연애를 했다고 말했다. 연애할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혜리와의 애정 신을 소화했다고. 그래선지 최근엔 다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MBC '결혼합시다'에서 추상미 씨의 연하 애인으로 나와서 장난기 많고 능청스런 연기를 했죠.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드라마를 보고 연락을 했어요. 자기랑 했던 걸 다 써먹는다고. 연기자들은 자기 경험에서 찾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써 주신 것에 자기 경험을 섞어서. 연애는 정말 하고 싶어요."

박시후의 이상형은 '긴 생머리에 첫 느낌이 좋은 여자'다. 그에게 "너무 모호하다. 가령 마혜리의 어떤 면이라든지?"라고 묻자 그는 "에이, 또 소연 씨랑 엮으려고?"라고 웃었다. 기자가 계속 김소연과 연기한 소감, 실제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느냐, 얼마나 친하느냐 등등을 꼬치꼬치 물었기 때문이다.

"이상형은 편한 스타일에 청순하면서 밝으면서…. 아 이러다가 욕먹겠다. 공개 연애요?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절대 공개는 하지 않으려고요. 남자는 모르겠는데 여자는 헤어지면 그만큼 얘기들이 많고 상처 많으니까."

▶ 막판 몰아치기 촬영 일정에 찍다가 졸은 적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 특유의 '벼락치기' 제작 시스템 때문에 박시후는 촬영 내내 거의 잠을 못 잤다. 3일 밤낮을 찍고 또 찍었다. 처음 1, 2회는 한 달 동안 찍었는데 마지막 16회는 이틀 만에 해치웠다.

"정신없이 찍었어요. 대본이 현장에서도 차례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신을 건너뛰고 나오는 거라 우리가 이전 신을 추리해서 연기해요. 찍다가 졸고. 대본을 봐야 하는데 너무 졸리니까 몇 글자 읽다 보면 잠들어요. 디테일한 연기를 하고 싶은데 대본 보기에 급급하니까. 나는 더 보여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쩔쩔매고. 마지막 회를 찍을 때는 '이러다 정말 방송 못 나갈 수도 있겠다, 편집은 제대로 하려나' 걱정스러웠죠. 마지막 회를 보고 감독님께 '마술사'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고요."

스타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어머니는 아버지를 혼자 두고 충청남도 공주에서 올라왔다. 본의 아니게 부모님이 생이별을 하게 된 것. 마지막 회 단관 행사에 자리를 함께 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몰아치는 촬영 일정에도 김소연, 한정수(윤세준 역), 최송현(진정선)등 동료 배우들은 인터넷 팬 게시판에 자주 안부와 촬영 소식을 남겼다.

기자가 "시후 씨는 안부 글 전하는 데 박한 편"이라고 하자 그는 "공식 홈페이지에 글 남겼다"고 항변했다. 기자가 "달랑 하나? 그것도 하나 마나한 얘기였으면서"라고 하니까 그는 껄렁껄렁한 서 변호사 특유의 목소리로 "그걸 뭐 하러 매일 남기나? 하나라도 남기면 되는 거지!"라고 받아친다.

박시후는 공백기나 쉬는 날에는 주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검프에 캐스팅 된 때도 지난겨울 한 달 일정으로 미국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고. 뉴욕에 사는 지인을 찾았다가 라스베이거스, 애틀랜타시티 등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는 "나, 미국 생활 한 달 했더니 능청스러워 졌나봐"라고 웃기도 했다.

▶ '서변앓이'로 안방극장 넘어 아시아 팬 공략

검프 덕분에 박시후도 한류스타가 됐다. 다음 달 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 TV 페스티벌에 '한류대사' 자격으로 참석한다. 이후 일본 5개 도시 팬 미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박시후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그는 "서 변호사가 워낙 좋은 캐릭터라서 여운을 느끼고 싶어 급하게 다음 작품에 들어가고 싶진 않다"면서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통해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멜로물 보다는 누아르에 나오는 아주 나쁜 남자 역할도 구미가 당긴다고 했다. 서 변호사도 시크하고 나쁜 남자 같은 면이 있지만, 더 강한 역할에 흥미가 간다고. 미국 영화 '프라이멀 피어'나 '아메리칸 히스토리 엑스'에 나온 에드워드 노턴처럼 다중인격, 사이코 패스 역할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오래가는 향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50, 60대가 돼도 저만의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그런 배우요. 팬들과 오래오래 좋은 인연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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