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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영어공용화 케이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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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영어공용화 케이스스터디

동아일보입력 2010-03-21 23:08수정 2010-03-2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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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9시 반이 되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의 지하 주차장은 활기를 띈다. LG전자 임원 운전기사 25명의 영어회화 스터디가 시작되기 때문. 이들은 회화 책을 펼치고 "LG전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등의 표현을 영어로 익힌다. '비즈니스 영어'가 아닌 '드라이버(운전기사) 영어'다.

단순히 외국인 바이어를 마중하기 위해 통역 담당 직원이 운전사와 동행하는 건 드문 일이 됐다. 2년 전 LG전자의 '영어 공용화' 시행이 바꿔놓은 풍경 가운데 하나다.

●국내 첫 영어 공용화 시도

LG전자는 국내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2008년을 '영어 공용화 원년'으로 삼아 주목을 받았다. 영어 공용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기업은 많았지만 실제로 공용화를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2008년부터 경영회의는 영어로 진행됐고 해외로 보내는 e메일도 영어로 작성해야 했다. e메일 뿐 아니라 각종 서류도 영어도 써야 한다. 인사, 회계, 생산, 영업과 관련한 전산시스템 역시 모두 영어로 바뀌었다. 일부에서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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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스스로 영문서류를 작성하고 번역하는 직원이 늘었다는 점이다. 사내 통역 번역을 지원하는 잉글리시커뮤니케이션센터의 김나미 부장은 "2~3년 전에는 영문 서류를 번역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요즘은 통역 요청이 대부분"이라며 "통역도 국내 직원보다 외국인 임원들이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화 실력 향상도 나타났다. 사내에서 영어 공용화 모범 조직으로 꼽히는 경남 창원 가전사업본부는 지난해 11월 글로벌교육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본부 직원의 영어말하기 시험(SEPT) 점수가 2006년 3.3레벨에서 2009년 5.2레벨로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홍점표 HE사업본부 부장은 "영어 공용화 이후 영어가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메시지, 각종 보고서, 사보 등 영어를 접하는 기회가 많아져서다. 영어 공용화 이후 사내에는 영어회화 스터디 등 '영어 인프라'가 급속히 퍼졌다.

영어를 못하면 입사도 승진도 어려울 정도로 인사제도가 영어 중심으로 변했다. 승진 조건으로 단순한 토익 대신 회화 능력을 중점적으로 보는 토익 스피킹을 도입했다. 신입사원도 일대일 영어 면접을 중점적으로 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국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공용화(共用化)가 아닌 영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이는 공용화(公用化)였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 해외 법인에 힘이 실린다

해외 법인은 본사의 영어 공용화를 반기고 있다. 본사가 아닌 해외 법인을 주축으로 품질 높은 '프리미엄 제품'이 개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거에 해외 법인은 중저가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편이었다. 프리미엄 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본사와 해외 법인의 정보 공유가 필수적인데 언어 장벽 때문에 힘들었던 것. 하지만 영어로 업무 협력이 활발해지며 현지에서의 연구개발(R&D) 역량이 강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현지인들의 LG전자의 입사를 선호하는 정도도 높아졌다. 한국 기업이지만 영어로도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인식 덕분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보다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가 강해져 해외 법인 입사 지원자가 과거보다 2~3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해외 법인과 본사 사이에 업무도 빨라졌다. 과거에는 순차 통역을 많이 썼기 때문에 회의 시간이 2배로 걸렸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직접 영어로 말한다. 해외 법인 직원들도 업무 협업에 더 적극적이고 당당해졌다. 해외 법인에 e메일로 한글 문서가 전달될 때 외국인 직원들은 이제는 당당하게 "영어로 번역해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회의적인 목소리도 아직 많다. 한 직원은 "한글로 30분이면 쓸 서류를 2시간을 영어로 끙끙대면서 쓰고 나면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평상시에는 상관없지만 회의에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할 때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효율은 여전히 LG전자가 넘어서야 할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영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영어능력만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어를 실용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승진의 조건으로만 생각해 임직원 스트레스가 과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가장 큰 변화는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영어 공용화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LG전자 고위관계자는 "'이러다 끝나겠지' 하던 직원들이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업의 영어 공용화를 연구하는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려면 기업의 영어 공용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전 세계 8만 여명 직원 중 외국인이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LG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조은아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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