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후 한국선수 실격 바란다고 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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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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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공공의 적’ 된 美 쇼트트랙 간판 오노의 변명

《외국 스포츠 선수 가운데 이토록 한국인의 미움을 받는 선수가 또 있을까. 미국 쇼트트랙 간판 아폴로 안톤 오노(28·사진). 그는 올림픽 때마다 한국선수와 악연을 이어왔다.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레이스 초반 잦은 몸싸움을 하더니 한국선수들끼리의 충돌로 어부지리 은메달을 딴 데 이어 오해를 살 만한 발언과 몸짓으로 비난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오노는 미국에선 가장 사랑받는 겨울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딴 3개의 메달(은 1개, 동메달 2개)을 포함해 쇼트트랙 선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개의 메달(금 2개, 은 2개, 동메달 4개)을 목에 걸었다. 오노를 지난달 24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만났다.》

본보 단독 인터뷰

○ “한쪽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를”
오노는 지난달 14일 열린 남자 1500m에서 어부지리 은메달을 땄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했다. 경기 뒤에는 “한국 선수의 실격을 바랐다”는 말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그는 “목을 긋는 동작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다. 코치에게 선수 한 명이 실격을 당했냐고 물으면서 그런 동작을 했던 것이다. 한국선수를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실격을 바란다고 말한 적조차 없다. ‘이호석이 성시백과 몸싸움이 있었는데 그 선수가 실격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왜 언론에 내가 실격을 바랐다고 나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오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남자 1500m에선 김동성과 자리 다툼과정에서 화들짝 놀라는 표정과 함께 두 손을 들어올리는 할리우드 액션을 해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분노가 정점에 이르렀다. 김동성은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을 당했고 금메달은 그의 차지가 됐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는 오노는 “정말 그때 충격이 컸다. 그 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2005년 대회 출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비난하며 나를 죽일 것 같았던 한국사람들은 환대를 해줬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지 허무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 그는 한국인 친구가 많다. 한국에서 나오는 자신의 뉴스에 대해선 친구들을 통해 듣곤 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날 비신사적인 선수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내가 어쩔 수 있겠나.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쇼트트랙에서 몸싸움은 자주 일어난다. 일방적으로 한쪽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을 세 번 방문했던 그는 친한 한국선수가 많다고 했다. 누구인지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내가 이름을 말하면 그들이 다칠까 봐 걱정된다. 혹시 그들이 나로 인해 비난받고 마음 아파할까 봐 이름을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 장권옥-전재수 코치, 쇼트트랙 인생의 은인
장권옥 코치와…  아폴로 안톤 오노(왼쪽)와 장권옥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2003년 장 코치를 처음 만난 오노는 “그가 없었다면 진작에 쇼트트랙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한국인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장권옥 코치와… 아폴로 안톤 오노(왼쪽)와 장권옥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2003년 장 코치를 처음 만난 오노는 “그가 없었다면 진작에 쇼트트랙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한국인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오노는 한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그가 쇼트트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선수 때문이다. 12세 때인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인 김기훈의 경기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에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어렸을 때 함께 지내던 친구들 중에도 한국계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익혔다. 그는 “한국음식과 문화를 아주 좋아한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한국음식을 자주 사주셨다. 작은어머니도 한국사람이다”라며 웃었다. 인연은 또 있다. 그가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5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였다.

오노는 2003년 현 미국대표팀 장권옥 코치와 전재수 코치를 만나면서 쇼트트랙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만약 내가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진작 쇼트트랙을 포기했을 것이다. 기술, 스케이팅 등 모든 것을 가르쳐줬다”고 고마워했다. 옆에서 듣던 장 코치는 “오노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린다. 인터뷰 내용이 자신이 말한 방향과 다르게 변질될까 봐 걱정한다. 오노도 한국사람이 주위에 많으니 한국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선수들과 경쟁하면서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선수들은 진짜 강하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한국선수에게 경외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선수들은 정말 강하다. 그리고 늘 강하다. 이번 올림픽은 어느 때보다 체력은 물론이고 컨디션도 최상이어서 붙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고 칭찬했다.

○ 소치 올림픽은 마이크 들고 참가 가능성

국내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오노는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올림픽에 세 차례 출전해 8개의 메달을 따내며 쇼트트랙 통산 최다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어떤 조사에선 스노보드 1인자 숀 화이트를 제치고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겨울올림픽 선수로도 뽑혔다. 미국 언론은 이번 올림픽을 중계하면서 그를 가장 비중 있게 다뤘다. 실제로 그와 인터뷰를 추진하면서 미국 언론과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성사됐다.

쇼트트랙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정말 재미있고 어려운 스포츠 중의 하나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음 위의 내스카(NASCAR·북미 대륙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개조 자동차 경주대회)’같다”고 말했다. 28세인 그는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32세가 된다. 또 출전하기에는 많은 나이다. 혹시 메달을 더 딸 생각은 없는지 묻자 그는 “아마 소치에서는 스케이트 대신 마이크를 들고 참가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2018년에도 마이크를 잡게 된다면 꼭 평창에서 잡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아폴로 안톤 오노 △1982년 미국 시애틀 출생 △키 170cm, 몸무게 66kg △쇼트트랙 통산 최다 메달(금 2개, 은 2개, 동메달 4개)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은메달, 1000m 동메달, 5000m 계주 동메달



▲다시보기=오노, 이번엔 실격패…성시백 첫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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