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 관련 재심서 무죄판결 받은 日다치카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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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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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전 누명 벗게 해준 한국 민주화에 큰 감격”
“1974년으로 돌아가도 취재하러 다시 올 것”
유인태 몰골 안쓰러워 고기 사먹으라고 준 돈 공작금 둔갑… 독방수감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 한 막걸리집에서는 조촐한 축하연이 열렸다. 주인공은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正樹·64) 일본 일간현대 기자. 몇 시간 전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뒤집어썼던 ‘내란선동죄’ 범죄자라는 멍에를 벗을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

동료 일본인 기자들과 한국인 지인에게서 술잔을 건네받으면서 다치카와 기자의 머릿속에는 오래된 흑백필름처럼 탈색돼 버린 지난 36년간의 세월이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머리 위에 제법 흰서리가 내려앉았지만 1974년 그때만 해도 그는 20대 후반의 열혈 기자였다. 엄혹했던 시절 한국의 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하러 온 그는 엉뚱하게 사건에 휘말렸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36년 전 일이었다고 믿기지 않아요.”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10층 일민라운지에서 만난 다치카와 기자는 “당시 지명수배로 쫓기던 유인태 전 국회의원(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이 안쓰러워 7500원을 쥐여준 것이 내 운명을 바꿔 놨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다 만난 유인태가 매일 잘 곳도 없이 돌아다녀 몰골이 초췌한 데다 “라면밖에 못 먹고 산다”는 말에 불고기라도 사 먹으라며 취재 사례의 뜻까지 겸해 준 돈이었다.

다치카와 마사키 씨가 28일 동아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36년 만에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심경을 밝히고 있다. 박영대 기자
다치카와 마사키 씨가 28일 동아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36년 만에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심경을 밝히고 있다. 박영대 기자
측은한 마음에 건넨 7500원(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은 7400원)이 수사 과정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혁명 자금’으로 둔갑하면서 그는 내란선동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낯선 땅의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징역 20년 선고를 받고 10개월을 복역한 뒤 일본으로 추방됐지만 그는 10년 동안 한국에 올 수 없었다.

입국 금지가 해제된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는 해마다 서너 차례씩 한국을 찾았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그 고생을 했는데도 애정이 남아 있느냐”고 묻지만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한국의 민주화 현장을 취재하러 오겠다. 현장을 봐야 하는 게 기자다”라고 대답했다.

“수배자에 7500원 줬다고 내란선동죄… 쓴웃음만 나왔죠”
아내 피해망상 시달려 결국 이혼… 눈물 머금어
출소 10년뒤 다시 오니 모두 미안하다고 사죄…36년전 투사 넘친 한국
지금은 자신감이 넘쳐… 한-일 가교역할 할 것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가 한국의 민주화 현장 취재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7세의 젊은 기자였던 그는 신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독일인 기자의 소개로 만나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를 인터뷰해서 기사를 쓴다면 탄압받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기사는 보도하지 못했지만 그에게 더 좋은 취재 기회가 찾아왔다. 1973년 8월 중앙정보부가 일본 도쿄에서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본에서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큰 이슈가 된 것. 데스크에서 즉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 현장을 취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치카와 기자는 “한국에서 현장을 취재하면 민주화 운동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접촉하고 많은 얘기를 들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1975년 2월 10개월간의 복역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강제 추방되기 직전 함께 구속됐던 재한 일본인 대학강사 하야가와 요시하루 씨(가운데)와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5년 2월 10개월간의 복역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강제 추방되기 직전 함께 구속됐던 재한 일본인 대학강사 하야가와 요시하루 씨(가운데)와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는 “김지하 시인, 장준하 선생 등 한국의 많은 민주화 투사들을 만났지만 당시 젊은 대학생이었던 이철, 유인태 전 의원의 눈빛과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1974년 4월 5일 취재를 끝내고 돌아가려는 날까지 그는 한국 정부가 그를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날 아침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에게 경찰 4, 5명이 찾아왔다. 그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고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유인태에게 건넨 7500원은 학생운동을 하던 그들에게 전달한 북한의 공작자금으로 둔갑했다.

그는 “일본어 통역을 통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혐의가 날조됐다”며 “나중에 공소장에서 ‘내란선동’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무서운 단어를 봤을 때는 너무나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내 인생에 펼쳐지고 있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독방에 수감된 그는 재판 전까지 가족은 물론 변호사도 만날 수 없었다. 체포 이후 2개월 만에 법정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 아내를 볼 수 있었다. 법정으로 들어서는 그에게 아버지가 ‘마사키!’라고 나지막이 외쳤지만 경찰의 제지로 대답조차 못했을 때에는 죄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아버지는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때 저지른 불효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철 前의원 축하인사다치카와 마사키 씨(왼쪽)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민청학련’ 사건 당시 인연을 맺었던 이철 전 국회의원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김재명 기자
이철 前의원 축하인사
다치카와 마사키 씨(왼쪽)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민청학련’ 사건 당시 인연을 맺었던 이철 전 국회의원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김재명 기자
낯선 이국의 감옥에서 보낸 시절은 그의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내몰았다. “아내는 당시의 충격으로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고 회상하며 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출소해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아내는 자주 “이웃들이 당신을 가리켜 ‘빨갱이’라고 수군거린다”거나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한다”며 신경과민 반응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살까지 시도했다. 충격을 받은 아내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결국 사고로 아들까지 잃고 아내와 이혼해야 했다.

한국 법원은 36년간 그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간 뒤에야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상황 보고에 7500원을 ‘취재 사례비’라고 표현한 것은 ‘폭력혁명 수행자금’에 보태라고 표현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며 내란선동 등 혐의에 무죄를,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는 면소 판결을 내렸다.

다치카와 기자는 “그 사건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꿔놨지만 한국을 좋은 곳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친 중앙정보부 조사 당시 일본어 통역사부터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종필 전 국무총리까지, 출소 이후 10년 뒤 돌아온 한국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미안하다”며 한국의 잘못을 사죄했다고 한다.

그는 “1970년대 중반의 한국은 정부의 억압에 지식인뿐 아니라 길을 걸어가는 보통 사람 한명 한명까지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넘쳤던 곳”이라고 기억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에 한국은 아픈 과거사를 떨쳐내고 자신감과 활기가 넘치는 나라로 변해 있었다.

그는 “30년이 지난 과거사를 다시 꺼내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됐는지 느끼고 있다”며 “무죄 판결을 받은 것보다 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물론 당시 재판까지 받은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낼 생각이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취재해 일본에 알리는 한일 간 문화의 가교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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