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판사 법리소홀이 문제… 중대사건은 합의부로 넘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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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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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운 서울고등법원장 인터뷰

■ 잇단 판결 논란에 대해
법원에 대한 오랜 불신 탓
경력법관제 확대 시행 등 근본적인 개혁안 필요

■ 사법제도 개선 어떻게
고법에 재판연구관 둬
2심서 사실상 재판 마무리를 형소법 개정은 시기상조

■ 후배들에게 한마디
요즘 젊은 판사들 소통 부족
‘국민 위한 존재’ 명심하고 직책 자체에 집착 말았으면


“검사나 변호사, 학자 등 법조계 필드에서 5년 이상 경력과 인품을 쌓은 뒤 판사로 임관해야 국민이 법원을 믿고 재판을 맡길 수 있을 겁니다.”

이태운 서울고법원장이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사법 불신의 원인에 대해 “일부 형사단독 판사가 경험이 부족하고 법리에 소홀한 독단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국민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이태운 서울고법원장이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사법 불신의 원인에 대해 “일부 형사단독 판사가 경험이 부족하고 법리에 소홀한 독단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국민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이태운 서울고등법원장(62·사법시험 16회)은 28일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력법관제도(법조 일원화)가 확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국사건에 대한 잇단 무죄 판결 등으로 빚어진 사법부 개혁 논란에 대해서는 “법원에 대한 국민의 오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중요 사건을 맡은 형사단독 판사가 경험이 부족하고 법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법원장들이 중대 사건을 재정합의부로 과감하게 재배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은 전국 고등법원 사건의 3분의 2를 담당하는 거대 법원이다. 관할 지역(서울 경기 인천 강원) 인구수만 26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5%를 차지한다. 일선 법원장 가운데 최고위 법원장인 그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장실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바람직한 사법부 개혁 방향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간간이 후배 법관들에게 뼈 있는 조언도 했다.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폭력 무죄 판결 등으로 판결 시비가 불거지면서 법원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법원에 대한 오랜 불신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번 논란은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맡은 형사단독 판사가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법리에 소홀해 독단적인 판단을 했다는 비판에서 비롯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우려와 비판을 고려해 형사단독 판사의 경력을 높이고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형사단독 판사의 경력은 어느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경력은 좋은 재판을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형사단독 사건 중에는 판례가 있고 업무 정형에 속하는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기존 단독판사에게 맡기되 사회적 파장이 큰 중대 사건은 재정합의제도(단독판사 3명이 함께 심리하는 재판)를 적극 활용하거나 합의부 재판부(부장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로 적극 재배당해야 합니다.”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 이후 법원장들이 사건의 재배당에 극히 소극적입니다.

“중요 사건에 대해선 법원장들이 사법행정권 작용의 일환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담당 판사에게 재정합의부로 돌리도록 권유해야 합니다. 단, 자의적으로 사건을 재배당해서는 안 됩니다.”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도를 둘러싼 법관 인사제도를 뜯어고치자는 법원 안팎의 요구가 많습니다.

“궁극적으론 애초부터 1심 지방법원과 2심 고등법원에 판사를 분리 배치하는 이원화 인사제도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처럼 1심에서 했던 재판을 2심에서 그대로 하는 속심(續審) 형태는 지양하고 1심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만 추가로 심리하는 사후심(事後審) 형태로 가야 합니다. 또 고등법원에 재판연구관을 둬 2심에서 재판이 사실상 마무리되도록 집중 심리해야 합니다.”

정치권의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검찰은 사법 협조자의 형벌감면제나 영장항고제, 플리바기닝(자백 시 면책제도) 등 검찰에 유리한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해 이 법원장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무죄가 선고된 것을 제도 탓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그럴수록 검찰 스스로 과학적인 수사를 하고 증거 확보에 노력해야 합니다. 검찰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인신구속과 수사 및 재판이라는 큰 틀에서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그는 법원 내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우리법연구회에 대해서는 “최근 일부 법관이 독단적 판단을 내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러한 일련의 판결 논란을 이념적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며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사법부를 이념적 잣대로 판단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판결을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지난해 초등학교 여학생 성폭력 사건인 이른바 ‘나영이 사건’으로 아동성범죄에 대한 양형 논란이 거셌습니다.

“국민의 법감정과 법관의 관행적인 양형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특히 음주감경처럼 그동안 다소 안이하게 이루어진 양형에 대해서는 판사들도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양형기준제가 양형제도의 개선에 큰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 법원장의 부인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전효숙 이화여대 교수다. 이들은 국내 최초로 부부가 함께 고등부장판사로 승진해 화제가 됐다. 다음 달 초 퇴임을 앞둔 이 법원장은 중견 로펌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1시간 반가량 이어진 인터뷰를 마치며 후배 법관들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즘 젊은 판사들은 컴퓨터하고만 친하다 보니 선후배는 물론이고 동료들 간에도 소통이 부족합니다. 판사들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판사라는 직책 자체에 집착해서 요구만 하는 것은 지양해 줬으면 합니다. 서로 소통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 이태운 서울고법원장

-전남 광양 출신(62세)
-순천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16회
-대전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법정국장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
-의정부지법원장
-광주고법원장
-대전고법원장
-현 서울고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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