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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권재현]정치적인 것의 귀환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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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권재현]정치적인 것의 귀환 ‘선덕여왕’

동아닷컴입력 2009-12-17 17:43수정 2009-12-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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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과 덕만의 상반된 처지와 치열한 권력다툼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되묻는다 사진=MBC‘선덕여왕’

고대 그리스인에게 삶은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에(zoe)라 불리는 사적인 삶이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라 불리는 공적인 삶입니다. 조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도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삶이라면 비오스는 폴리스(polis·도시국가)에 사는 시민이 영유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조에가 야생의 삶이라면 비오스는 문명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규정했을 때 겨냥한 삶이 무엇일까요. 네, 당연히 비오스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조에에만 머물면 노예와 다를 바 없으며 비오스에서 자아실현을 이룰 때 진정한 사람이라고 본 것입니다. 동양도 비슷합니다. 중국에선 예로부터 공(公)은 여러 사람이 관여된 공공에 대한 일을 의미한 반면 사(私)는 개인의 이익에 관여된 일을 넘어서 아예 삿된 것(邪)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공은 군자의 일이요, 사는 소인의 일인 것입니다.

▶'비오스'(bios)를 닮은 선덕과 '조에'(zoe) 덕만의 강렬한 대비

한국의 고대시대를 다룬 역사판타지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설정을 보여줍니다. 비오스의 삶을 사는 선덕과 조에의 삶을 사는 덕만의 대비입니다. 드라마는 천명공주와 덕만공주를 쌍둥이로 설정하고 정치적 이유로 신라왕실에서 버려진 덕만이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인 끝에 공주로 복권되고 끝내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으로 등극한다는 것을 기본골격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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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인공이 초년고생 끝에 영웅이 된다는 고전소설이나 무협지에서 발견되는 전형적 구조입니다. 실제 저는 덕만 역의 이요원이 칼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전쟁터에서 적군을 볏단 베듯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채널을 돌려버렸습니다. 사극하면 무조건 무협지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땅의 드라마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 내용 뒤에서 묘하게 꿈틀거리는 게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덕만이 자신이 신라황실의 혈통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 나타납니다. 사실 드라마의 덕만은 고대의 인물이 아니라 근대의 인물입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무엇보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합니다.

혈통이나 신분보다 실력과 사람됨을 중시하고 낳은 엄마보다 키워준 엄마를 더 사랑합니다. 이런 근대적 자아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은 정치란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의 사랑과 행복을 우선시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덕만은 조에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비오스의 성취를 추구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은 덕만의 모방 욕망

물론 이를 "모든 억압된 것들은 귀환한다"는 라캉의 공식에 따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덕만이 신라로 돌아오고 황실로 돌아오는 것을 자신의 것이었지만 정당하게 누릴 수 없는 것을 되찾기 위한 무의식적 귀환본능이라고요. 그렇지만 이런 공식에 따르면 덕만의 귀환은 고구려 유리왕처럼 부왕에게 자신이 딸임을 인정받는 순간 끝나야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간다고 해도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미실 일파를 쓸어버리는 피의 복수극을 통해 부당한 세상을 정화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야합니다.

문제는 덕만의 욕망이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에 있습니다. 신라의 정치 공간이란 비오스에 들어온 뒤 덕만은 인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또 다른 정의로서 '모방의 동물'에 충실한 존재가 됩니다. 그 첫 번째 모방의 대상은 쌍둥이 언니인 천명입니다. 덕만은 미실에 맞서 신라정국을 황실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천명의 꿈을 좇습니다.

덕만의 천명 모방은 의미심장합니다. 쌍둥이인 둘의 삶은 조에와 비오스의 양 극단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만이 말 그대로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조에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천명은 신라황실이란 공간에서 진지왕의 유일한 혈육으로 철저히 비오스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이들 자매의 만남은 곧 조에와 비오스의 통합을 의미하며 불완전했던 각자의 삶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음을 뜻합니다.

▶덕만의 대의(大儀)에 무릎을 꿇는 미실
덕만이 극복하고자 했던 '미실'은 결국 덕만의 모방대상이 된다. 대중이 덕만보다 미실에 열광했던 이유는 미실이 가진 욕망하는 근대적 주체의 매력 때문이다. 사진=MBC ‘선덕여왕’

완성은 다시 분열을 낳습니다. 비오스의 정치공간에선 두 명의 천명/덕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칼 슈미트가 말한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 동질화를 지향하면서 한편으론 모방대상과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합니다. '모방의 동물'에서 '정치적 동물'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런 갈등상황을 자매간 권력투쟁으로 그릴 수 없었기에 그 중 하나인 천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해소합니다. 다만 천명 사후 벌어진 덕만과 천명의 아들 춘추의 갈등으로 이를 표면화했을 뿐입니다.

덕만의 두 번째 모방의 대상이 최대 정적이었던 미실이란 점은 이를 더욱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덕만은 미실과 정치적 대결을 펼치면서 점차 미실을 존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점차 미실을 모방합니다. 천명의 경우와 반대로 '정치적 동물'에서 '모방의 동물'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미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실은 덕만(여왕)과 춘추(진골 출신의 왕)를 통해 잠자고 있던 본능(진골출신의 여왕)에 눈을 뜹니다. 이 역시 '정치적인 것'의 본성입니다.


여기서 미실과 덕만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실은 섹스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인물입니다. 섹스는 비오스의 영역이 아니라 조에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권력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조에와 비오스를 일치시킵니다. 반면 덕만은 유신과의 사랑이란 조에를 포기하면서 신라황실의 권위회복이란 비오스의 완성을 꿈꿉니다. 미실이 조에를 통한 비오스의 쟁취를 꿈꿨다면 덕만은 조에를 넘어선 비오스의 완성을 꿈꿉니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근대적 자아를 지녔던 그래서 시청자의 분신과 같던 덕만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점차 고대의 영웅으로 변모해갑니다. 그 촉매제가 바로 미실입니다. 미실은 덕만보다 조에에 더 충실한 존재, 그래서 욕망하는 주체로서 근대적 인물에 더욱 가까운 존재입니다.

덕만은 그런 미실과 정치적 대결을 펼치면서 조에보다 비오스를 중시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합니다. 덕만을 철없는 이상주의자라고 비웃던 미실조차 그런 덕만의 대의(大儀)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미실이 최전방의 병력을 빼 쿠데타에 동원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는 고대의 영웅으로 최후를 맞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적으로 놔두면 무섭고 친구로 둬도 불안한 것

그 핵심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비오스의 핵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마력입니다.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가 상탈 무페는 '정치적인 것'을 망각 내지 외면하면서 '경제적인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최대 위기라고 지적했습니다.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가 한나 아렌트 역시 조에보다 비오스를 우선시했던 고대정치로의 복귀만이 현대 민주주의의 중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갈등과 적대를 먹고 자랍니다. 이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면 그것은 점차 불가사리처럼 무서운 괴물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에 들어 가야한다는 정신으로 그 등에 올라타기만 하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가장 잘 형상화한 인물이 바로 비담입니다.

비담은 올곧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음흉한 다스베이더의 두 얼굴을 지닌 사내입니다. 그의 스승 문노는 비담의 내면에 숨은 다스베이더를 본 순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비담 내부에 숨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발현시키지 못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반면 덕만은 오히려 야누스같은 비담의 본성을 꿰뚫고 있기에 비담과 함께 대업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비담의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끼셨다면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도 문노가 되지 말고 덕만이 되어주세요. 적으로 놔두면 무섭고 친구로 둬도 불안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게 바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실처럼 철저히 현실적인 핏줄을 타고났지만 덕만처럼 이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는 '짐승남'입니다. 덕만의 귀환으로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성공이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인 것의 귀환'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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