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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을 말한다]<4>조성룡 교수의 용인 ‘지앤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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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을 말한다]<4>조성룡 교수의 용인 ‘지앤아트스페이스’

동아닷컴입력 2009-11-18 03:00수정 2009-11-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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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소박한 외형 안에 풍성한 동선의 이야기를 감춘 건물이다. 지하 레스토랑 앞뜰(아래) 같은 숨겨진 공간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조성룡도시건축


《땅 밑에 파고든 양지의 풍경.
16일 오전 찾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영하 7도의 칼바람이 닿지 않는 포근한 공간이었다.
지난해 6월 완공한 이 건물은 앞길 건너 남쪽의 백남준아트센터에 가려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랜드마크에 맞서지 않고 반대로 몸을 낮춘 이 공간에는 들어가 거닐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설계자인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65)는 “건축주에게 제안을 받았을 무렵에 막 백남준아트센터 계획이 발표돼 망설였다”고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흐르는 ‘땅밑 골목길’

“예정만 있을 뿐 실체가 없었던 랜드마크와의 관계 맺음을 고민하기가 쉽지 않았죠. 한가로이 거닐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공간을 만든다면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건물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좋은 곳은 백남준아트센터 2층의 옥외 카페다.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자연녹지지역 용지의 20% 건폐율 제한을 지키기 위해 공간 대부분을 지하에 묻었다. 완만한 오르막길 모퉁이에 얹은 얌전한 형태의 노출 콘크리트 벽체는 길 건너에서 내려다볼 때 비로소 그 안의 넉넉한 공간을 내보인다.

조 교수는 여섯 살 때 6·25전쟁을 겪었다. 부산으로 피란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첫 집의 기억은 일본식 나가야(長屋·밀집지역 소형 주택) 한 칸. 다음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머문 변두리 초가집이었다. 지앤아트스페이스가 품은 굽이굽이 골목 풍경은 그 무렵 뛰놀던 공간의 경험에서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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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는 공간의 경험이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했죠. 중3 때는 기계설계 일을 하신 부친이 설계한 신식 벽돌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세식 화장실을 구경하러 오곤 했어요.(웃음)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이 땅의 주거 공간 역사를 압축적으로 체험한 셈입니다.”

지하에 레스토랑-갤러리… 아기자기한 동선 연출

재미난 골목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 그 골목을 지나는 사람이 누굴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사적 공간은 예술을 나누며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서쪽 카페, 지하 레스토랑과 갤러리, 북쪽 스튜디오와 도자(陶瓷) 가마는 여러 모양새로 갈라진 외부 통로로 연결된다. 하나의 정해진 출입구 없이도 이들의 동선은 하나로 통한다. 조 교수는 1986년 완공한 인하대 학생회관에서도 로비 등의 용도를 미리 정하지 않은 공간을 제안했다.

“행정계획으로 정한다고 문화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백남준의 예술을 만끽한 뒤 지적 포만감을 정리하는 쉼터로 써준다면 감사한 일이죠.”

필요한 기능을 찾아 여러 방향으로 진입한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의 스토리텔링은 제각각이다. 모퉁이 너머마다 예상 못한 장면이 숨어 있다. 클라이맥스는 지하의 네모난 인공 연못. 여러 개의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이어붙인 옴니버스영화에 대한 연상은 이날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조 교수의 작업실에서 확인됐다. 낡아빠진 하늘색 영사기와 수북한 영화필름 릴 케이스, 둘둘 말린 구식 스크린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DVD로 데이터베이스를 바꾼 미국 도서관에서 싸게 사들인 것이 대부분이에요. 1996년 여러 건축가와 의기투합해 만든 서울건축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썼습니다. 영화는 짧은 기간 정신없이 겪어 온 근대와 현대 건축의 변화를 차근차근 확인하는 데 유용한 매체거든요.”

스위스 출신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는 영화 제작 기법을 활용해 건축 공간을 설명하려 했다. 조 교수는 취미와 일을 그렇게까지 연결할 생각은 없다. 그는 “공간을 계획하면서 그곳에 사람이 머물러 있는 장면을 영화처럼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데는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간을 경험하며 건축가의 의도를 상상해 보는 사용자는 드물다. 하지만 사용자가 경험할 ‘장면’에 대한 건축가의 상상은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2003년 조 교수에게 한국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서울시건축상을 안긴 서울 선유도공원의 풍경에도 사용자가 마주칠 공간의 이야기에 대한 상상과 배려가 있다. 그는 인공적인 형태미에 집착하지 않는다. 땅에 새겨진 기억을 차분히 모아 담은 공간이 편안한 풍경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서울 서초구의 주택 ‘양재 287.3’(1992년), 광주 의재미술관(2001년) 등에서도 이렇게 마련한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선유도공원처럼 외딴 곳을 어떤 이가 어떤 마음으로 찾을까요. 복잡한 도시 속에서 잠시 한가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려면 여느 공원처럼 이것저것 다 갖춘 놀이터일 필요는 없었죠. 그런 공원에 어울리는 볼거리는 어떤 것일까요. 쓸모없어진 정수장 설비의 잔재는 한 공간이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치환되는 시간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어떤 풍경에든 넉넉한 이야기가 있다. 조 교수가 믿는 건축은, 우리가 무심히 잃어가는 그 이야기를 찾아 보여주는 영사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조성룡 교수는

△1966년 인하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5∼94년 우원건축 대표 △1995년 조성룡도시건축 대표 △1996∼2003년 서울건축학교장 △2007년 성균관대 석좌교수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광주 의재미술관) △2003년 한국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서울시건축상(서울 선유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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