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마녀사냥 ‘신상털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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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녀… 군삼녀… 조두순…
학교-직장에 비난전화 폭주
관련없는 사람까지 ‘매장’


‘조두순 신원 파악, 경기 안산시 ○○아파트. 얼굴 사진 있음.’

얼마 전 인터넷에선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의 얼굴이라며 사진 한 장이 나돌았다.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며 한 누리꾼이 퍼뜨린 사진이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은 평범한 시민 A 씨였다. 사진은 A 씨가 2007년 인터넷 산악회 카페에 올린 증명사진이었다. A 씨가 ‘사진을 올린 누리꾼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자 곧바로 사진 유포는 잠잠해졌다.

평범한 시민의 학교, 주소 등 신상 정보가 하룻밤 새 낱낱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이른바 ‘신상 털기’는 이미 일반화됐다. 화제가 되는 특정인의 미니홈피를 추적하고 구글링(구글 검색)으로 신상 정보를 밝혀내는 방식이다. 이번 ‘루저녀 사태’ 역시 이모 씨의 방송 발언 직후 신상 정보가 순식간에 드러나며 시작됐다.

신상 털기는 2005년 ‘개똥녀 사건’ 때부터 본격화했다.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애완견의 변을 치우지 않고 내렸고 다른 승객이 변을 치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이를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여성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즉각 해당 사진을 온라인에 퍼뜨리는 한편 미니홈피를 추적한다며 ‘싸이 추적대’를 꾸렸고, 열차 번호와 열차 시간표를 바탕으로 이 여성이 내린 역을 추론하기도 했다. 결국 이 여성의 신상 정보가 밝혀졌고, 그가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는 각종 비난 글로 마비됐다.

신상이 털려 직장을 관둔 사람도 있다. 변심한 애인 B 씨 때문에 딸이 자살했다는 한 어머니의 사연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이후 누리꾼들은 일주일도 안 돼 B 씨의 직장과 직책을 낱낱이 공개했다. B 씨 직장에 전화가 폭주했고, B 씨는 끝내 회사를 그만뒀다. 2007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군대 18개월은 너무 짧아요. 3년은 돼야죠’라고 말한 여성은 ‘군삼녀’라는 이름이 붙으며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됐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이 여성의 얼굴이 ‘임신 10개월은 너무 짧고요. 3년은 돼야죠’ 등의 패러디로 희화화돼 올려져 있다.

드물지만 신상 털기가 미담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역 앞에서 추위에 떨던 노숙자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고 빵까지 사다준 ‘목도리녀’는 신상이 공개된 뒤 ‘시민 천사’라는 이름으로 찬사를 받았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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