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학,장르를 박차다]<7>소설가 김태용 씨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어수선한 ‘B급 영화’서 영감 얻죠”

작품을 보면 작가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도발적이거나 난해하거나 전위적이거나 파괴적인 작품을 접할 때 더 그렇다. 이 작가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커피전문점 앞에서 소설가 김태용 씨(35)를 만났다. 함께 인터뷰 장소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그는 며칠 전 겪은 불가사의(?)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아침잠에서 깼을 때 이상하게 신문사에서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책을 낸 것도 아니고 계기도 없어서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동아일보에서 인터뷰 전화가 왔던 거죠.”

그런 일이 평소에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뭐, 가끔”이라고 답했다. “예감을 믿는 편”이라는 그는 사실 신중하고 서정적인 편에 가까운 듯했다.

김 씨는 2005년 단편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으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했고 등단 2년 만에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를 펴냈다. 전통적인 가족상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낯선 형식으로 전복시켰던 이 첫 소설집으로 지난해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계간 ‘자음과모음’에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요즘에 이 연재 때문에 “작업실 가는 게 지옥으로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1년째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고시원의 한 평 반짜리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이 묘한데 지하에서부터 남성용 마사지업소, 감자탕집, 종이공장이 있고 맨 위층에 고시원이 있어요. 퇴폐적이면서도 음울한 분위기가 제 작품과 비슷한 것도 같아요.”

김 씨는 매일 오후 9시경 홀연히 고시원을 찾아 글을 쓴 뒤 오전 4시경 지친 모습으로 돌아간다. 고시원 주인은 이 정체불명의 남자에 대해 한동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좁은 고시원 작업실에서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한밤중에 연신내의 유흥가를 산책한다.

인과관계가 있는 뚜렷한 서사보다는 충격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 주로 등장하는 김 씨의 작품 세계는 B급 영화(소규모 제작비의 장르영화)에 탐닉했던 시절의 영향이기도 하다. 군대를 제대한 뒤 뒤늦게 숭실대 문예창작과에 00학번으로 입학하기 전까지 영화와 책을 보면서 3년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글이라도 안 썼으면 뭐했을지 진짜 걱정”이라는 등의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지냈다.

그는 “정돈되지 않은 과감함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연성을 지닌 B급 영화에서 문학적으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소설이 우울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의외의 유머 때문이다. 그는 “생각해보면 잔혹함, 비현실적인 설정에서 뜻밖의 유머가 나오는 것이 B급 영화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죽으면 묘비명을 뭐라고 남길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정한 게 있어요. ‘죽을 때까지 유머를 잃지 말라, 세상이 두 쪽 나더라도’이거든요. 저한테 ‘유머’란 건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소설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나 방식이기도 해요.”

그래서일까. 별명 역시 ‘조치(早癡·일찍이 어리석다)’다. 어떤 질문에도 “좋지, 뭐”라고 대답하는 말버릇 때문에 텍스트 실험동인 ‘루’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준규 시인이 붙여줬다. 딱히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약간은 우유부단하면서도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모두 담고 있는 별명이다. 작가는 “악의는 없으면서도 빈정대는 듯한 ‘어리석다’는 단어를 좋아해서 작품에도 이 단어가 알게 모르게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동인 ‘루’의 모토도 ‘어리석은 사람을 망치는 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자리를 신촌 기차역 인근의 바로 옮겼다. 젊은 문인들이 즐겨 찾는 이곳에서 같은 동인인 한유주 이두성 씨가 합석했다. 세 사람은 문학텍스트의 영상화를 고민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계획 중이다. 진척 상황을 묻자 “계획만 1년째”라고 답했다. 마감을 조금 걱정하는 듯하더니 이들은 이내 “괜찮지, 뭐”라며 서로를 격려하곤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김인정 인턴기자 연세대 영문과 4학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