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끌리는 막걸리, 최고의 건강음료!”

  • 입력 2009년 7월 31일 07시 42분


한국 가양주협회장 류인수

국내 국외 따질 것 없이 막걸리가 난리다. 특히나 비 오는 날엔 막걸리가 천하의 술판을 평정한다.

주류업체인 국순당은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막걸리 매출이 지난해보다 무려 18배나 늘어난 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단군 이래 최대의 막걸리 호황이라 하겠다. 자고로 농사짓다 목을 축이고 허기를 채워주던 농주, 막걸리. 도대체 막걸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막걸리는 술이 아닙니다. 시원한 한 잔의 음료죠. 그것도 최고의 건강음료.”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한국가양주협회에서 만난 류인수 회장(32)은 음식을 소재로 한 허영만 작가의 베스트셀러 만화 ‘식객’에도 소개된 젊은 우리 술꾼이다. 가양주란 집에서 직접 빚는 술을 말한다.

류 회장은 우리 술을 살리고 보전하기 위해 ‘1가구 1가양주 빚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10만 가구, 10만 종의 가양주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우리 술의 ‘10만 양병설’이다.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막걸리는 대표적인 우리 술이지만 법적으로는 전통주에 포함이 안 되어 있다는 사실. 막걸리는 밀로 만드는 데 이 밀이 100%% 수입산이거든요.”

국내법상으로 전통주는 민속주와 농민주로 나뉜다. 농민주의 경우 일반 농민들이 손쉽게 술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재배한 곡물을 50%% 이상 넣어 제조해야 하며, 100%% 국내산 원료만이 들어가야 한다. 이 법에 의하면 수입밀로 만든 막걸리는 농민주가 될 수 없다.

“막걸리가 맛은 좋은데 먹고 나면 트림이 나고 머리가 아픈 것이 단점인데요.”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는 물을 많이 혼합해서 만듭니다. 원래 15도쯤 되는데 여기에 물을 타서 5도 정도로 낮추니 맛이 싱겁죠. 그래서 아스파탐이니 아세설팜이니 하는 첨가물을 넣어 술맛을 맞추는 겁니다. 맛은 그럭저럭 나는데 말씀하신 문제점이 생기게 되죠. 미숙성 술로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미숙성 술이요?” “완전히 발효가 안 끝난 술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몸 안에 들어가 계속 발효를 한다는 거지요. 트림을 유발하는 탄산가스도 발효가 덜 된 술이 몸속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시달릴 수밖에 없지요.”

류 회장은 “막걸리는 한국의 음료이자 약”이었다고 말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어지간한 동네에는 양조장이 하나쯤 있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면 주전자에 철철 넘치는 막걸리 심부름 한두 번 안 해 본 이가 없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막걸리에 ‘정’이 있었죠.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네 사람들이 먹는 술이었으니까요. 밀가루로, 사카린을 사용해 만들었지만 그때 양조장에는 자존심이 있었어요. 요즘은 그런 ‘꼰대 정신’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 생각만 하죠.”

그러고 보니 옛날 주조장 막걸리는 요즘처럼 탄산이 많지 않았다. 숙성을 다 시킨 완성된 술이라 그랬던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 바로 막걸리와 동동주의 관계이다. 뭔가 인척(?)처럼 가까운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동동주가 더 기품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시중에서 동동주를 주문하면 막걸리보다 조금 더 값을 받는다. 그런데 막상 먹어 보면 동동주나 막걸리나 ‘그 놈이 그 놈’일 때가 많다.

“그 동동주요? 그거 막걸리입니다. 도수 5도짜리 동동주는 다 가짜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짜 동동주는 15도 정도 나오거든요. 시중에서 파는 동동주 중에는 막걸리에 사이다 부어 나온 것들도 많아요. 막걸리를 많이 가져다 놓으면 탄산이 빠져 나가거든요.”

“막걸리가 왜 막걸리냐 하면요. ‘막 걸렀다’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금 막 걸렀다’란 뜻도 있지요. 사람들이 동동주와 막걸리를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같은 것으로 여기는데 잘못된 겁니다. 진짜 동동주는 맑은 청주예요. 약주죠. 술 만드는 사람은 다 알아요.”

쌀로 술을 만들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쌀이 계속 술독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나중에는 맨 위에 엷은 쌀 층이 생기고, 최종적으로 몇 개의 쌀만 남게 된다. 술 빚는 여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동동주’라 불렀다.

“예전엔 동동주를 좀 더 품위 있게 불렀습니다. 흰 꽃이 피었다고 해서 백화주, 하얀 개미가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부의주라고도 했지요. 개인적으로 동동주는 술을 빚은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명주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동동주를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지요. 그것이 어렵다면 사 마시더라도 맑은 술에 쌀이 동동 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동동주입니다.”

막걸리는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명주이다.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만들 수는 없다. 물이 좋아야 한다. 천하에 산세가 좋은 곳에는 절이 있고, 물 좋은 곳에는 양조장이 있었다.

류 회장은 중국에 막걸리가 없는 이유를 물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이 좋지 않은 곳은 발효주가 맛이 없기에 독한 증류주가 발달한다.

“막걸리를 제일 맛있게 마시는 법은 역시 할 일 다 하고 나서 시원하게 한 잔 쭉 들이키는 거죠. 그러고 나서 김치 한 조각. 음미를 하고 싶다면 막걸리를 혀에 감길 정도로만 살짝 넣어보세요. 막걸리의 미세한 가루를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마시면 훨씬 더 맛있습니다. 밀가루가 많이 든 막걸리일수록 미세한 가루가 많거든요.”

“막걸리는 쌀 막걸리가 최고 아닙니까?”

“무슨 말씀. 오히려 쌀 양이 많이 들어갈수록 뒷맛이 적어요. 밀이 좀 들어가 줘야 청량하고 깔끔합니다. 쌀과 밀가루를 적당히 혼합한 막걸리가 그냥 쌀로만 빚은 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시중에서 쌀 막걸리라고 파는 것들도 밀이 조금씩 다 들어갑니다.”

대부분 막걸리는 쌀과 밀로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다. 류 회장에 의하면 “술의 종류가 곧 막걸리의 종류”다. 술을 빚고 남은 지게미를 걸러낸 것이 막걸리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중 막걸리는 아예 처음부터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제조하지만, 본래는 집에서 술을 빚어 맑은 술을 떠내고 난 뒤 나머지로 만든 것이 막걸리이다.

“사실 막걸리는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오늘 만들면 내일 먹을 수 있는 술이 막걸리죠. 내일 오전에 집에 손님이 온다? 오늘 저녁에 만들었다가 내일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게 살아있는 막걸리죠.”

류 회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명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막걸리요 다른 하나는 화주(花酒)다. 물이 좋기에 막걸리가 좋고, 화주는 세계를 뒤져봐도 빚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과하주(過夏酒).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것으로, 증류주의 강한 맛이 약해지고, 발효주의 부드러움이 입혀진 우리나라 최고의 술이란다. 오래 보관할 수 있기에, 여름을 날 수 있다 하여 과하주라 부른다.

인터뷰가 끝나자 류 회장이 “시음을 해보자”며 직접 빚은 술을 잔뜩 내왔다. 기본인 청주를 시작으로 형개주, 박하주, 계피주, 딸기주, 백년초주, 솔잎주, 감초주, 봉출주, 홍화주가 차례로 탁자 위에 놓였다.

나는 듯 마는 듯 부드러운 누룩향, 혀에 착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감칠맛,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뒤 다시 가슴을 타고 오르는 은근한 뒷심은 집에서 손수 빚은 술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한 병당 아주 조금씩 맛만 보았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취기가 올라왔다. 몽롱한 시선으로 창가에 나란히 세워진 술병을 세어보니 정확히 열 다섯 병. 류 회장이 “이제 겨우 삼분의 일 시음하셨는데요. 저거 다 드시고 가야 하는데”한다.

그의 등 뒤로 눈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술병의 산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마주보며 “하하하” 웃었다.

한국가양주협회: 02-525-7227

홈페이지: www.suldoc.com

○전통주교육센터 제1기 명주반 수강생 모집

모집인원 : 20명 (선착순 마감)

모집기간 : 7월 20일∼ 개강일 전까지

개강일 : 9월 1일·7일, 주 2회, 1개월 8회

수강료 : 25만원(재료비 포함)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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