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가 3D라고요? 야구장의 지휘자죠!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9분


41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히어로즈 포수 김동수. 프로 20년을 포함해 30년째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동수는 “포수는 꼭 한번 해볼 만한 매력적인 자리”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히어로즈
41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히어로즈 포수 김동수. 프로 20년을 포함해 30년째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동수는 “포수는 꼭 한번 해볼 만한 매력적인 자리”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히어로즈
‘안방지킴이 20년’ 히어로즈 김동수의 포수 예찬

소년에게는 형이 있었다. 부모님은 야구를 좋아하는 형제에게 글러브를 사줬다. 하나는 야수 글러브, 또 하나는 포수 글러브였다. 형이 먼저 야수 글러브를 골랐다. 동생은 포수 글러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화곡초등학교에 다니던 1979년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다. 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테스트를 받았다. 수십 명의 아이 중 포수 글러브를 가진 건 소년이 유일했다. “그럼 네가 포수 해.” 감독의 이 한마디로 그의 인생은 결정됐다. 30년이 지난 2009년, 그는 여전히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 히어로즈 포수 김동수(41)다.

○ 아들 같은 후배와 그라운드 누벼

올해를 시작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플레잉 코치’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5월 15일 처음 1군에 올라온 뒤 전반기 22경기에 나가 타율 0.375에 2홈런 11타점. 흔들리던 투수진은 노련한 그가 마스크를 쓴 뒤 안정을 찾았다. 전반기 막판 잠시 2군에 내려갔지만 김시진 감독은 30일 다시 그를 1군에 복귀시켰다.

1968년생이니 41세. 프로야구 선수 전체를 통틀어 야수로는 최고참이다. 투수를 포함해도 한화 송진우(43)에 이어 두 번째다. 김동수는 “올해 입단한 고원진이나 강윤구 같은 신인이 태어난 1990년에 나는 한국시리즈에서 뛰고 있었다”며 웃었다. 게다가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다는 포수. 그가 20년을 한결같이 선수로 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운(運)과 절제의 미덕

올 시즌은 유독 포수들의 부상이 많다. SK 박경완, LG 김정민, 삼성 진갑용, 롯데 강민호 등 각 팀 주전 포수들은 부상으로 줄줄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공에 맞는 일은 부지기수다. 홈으로 전력 질주하는 주자와 충돌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이래저래 부상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는 “얼마 전 우리 팀 포수 허준도 홈에서 주자와 충돌해 무릎인대가 파열됐다.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부상이 없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불행이 그를 피해갔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이토록 롱런하기는 어려웠을 터. 김동수는 “프로 선수는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야구에 집중하거나 열심히 놀 수 있다. 둘 다 잘하는 선수는 없다. 난 전자를 택한 것뿐이다”고 말한다. 인생의 중심을 야구에 맞춰 살아왔다는 얘기였다.

그는 술, 담배를 안 한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야구만 생각한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일상이 오늘의 최장수 포수 김동수를 만들었다.

그는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절제와 야구에 대한 열정이다. 재능 있는 선수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고 말했다.

○ 천당과 지옥의 롤러코스터

김동수의 야구 인생에도 시련은 있었다. 삼성 시절이었던 2001년 한국시리즈를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주전 포수는 진갑용의 몫이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경기 내내 벤치의 눈치를 봤다. 몸이 움츠러들었고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결과는 2승 4패로 준우승.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포수였나”하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이듬해 SK로 트레이드됐고 2002년 말 방출됐다.

오기가 생겼다. 30대 중반의 나이.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온몸을 던지고 싶었다. 기회가 왔다. 현대가 그를 불렀다. 2003년 그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그해 생애 처음으로 3할 타율(0.308)을 쳤다. 자신을 내친 SK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주인공은 4승 중 3승을 거둔 투수 정민태였다. 하지만 뒤에는 7경기 내내 마스크를 쓴 김동수가 있었다. 2004년에도 그가 리드한 현대는 다시 한 번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3년 사이 그가 맛본 지옥과 천국이었다.

○ 마음은 언제나 현역

20년이나 프로 선수를 하다 보니 안 겪어본 일이 없다. 1990년 LG에 입단해 신인왕이 됐다. 우승 반지를 4개나 꼈다.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7번을 받았다. 1999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돼 3년간 8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으로 팀을 옮겼는데 야수로서는 첫 FA 이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트레이드도 돼 봤고, 방출도 당해 봤다. 올해부터는 플레잉 코치라는 직함을 받았다.

김동수는 “정말 여한 없이 야구를 했다. 야구 선수로서 맛볼 수 있는 단맛, 쓴맛을 모두 경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감사한 게 팬들이다. 언제 유니폼을 벗게 될지 모르지만 유니폼을 입는 동안에는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싶다”고 했다.

○ “야구는 포수로부터 시작된다”

포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3D’ 포지션이다. 힘든 일에 비해 대우받기 쉽지 않고,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어렵다. 잘 던지면 투수 덕분이고 안타나 홈런을 맞으면 투수 리드를 잘못한 포수를 탓한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 유망주 중에 포수를 선호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하지만 김동수는 “포수는 꼭 한 번 해볼 만한 매력적인 자리”라고 말한다. 포수는 투수들과 교감을 나누고 상대 타자들을 알아야 하며, 벤치와 소통해야 한다. 경기장에서 모든 야수를 바라보면서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은 포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포수 예찬’을 위해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역시 20년 경력의 포수다웠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비로소 경기가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아니에요. 포수가 먼저 사인을 내야 투수가 공을 던질 수 있어요. 결국 야구는 포수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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