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광장을 가다]<5>한국 서울 광화문광장<끝>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9분


개장을 이틀 앞둔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싼 ‘분수 12·23’이 시범 가동을 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개장을 이틀 앞둔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싼 ‘분수 12·23’이 시범 가동을 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수난의 역사 털고… ‘新광화문시대’ 서울 심장에 열리다
첨단 IT기술로 전통 살리고 역사회복 등 테마별로 구성
양옆엔 365m 역사물길 흘러… 분수 12·23, 명량대첩 상징
‘플라워 카펫’ 국내 첫 도입

《‘경복궁 대궐 안에 지금 짓는 총독부가 맛친 후에 오래동안 만흔 력사를 가진 고대의 건축물인 광화문은 헐어버린다는 말이 세상에 잇서 애석하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데…총독부의 방침으로는 결단코 헐리치는 없을 터이요 장차 좋은 곳으로 옮길터이더라고 말하더라’(광화문 이전 계획을 최초 보도한 동아일보 1921년 5월 24일자 기사)

‘경복궁 정문 광화문 이뎐 공사는 수일 전에 해톄 공사에 착수하엿는데 정부는 궁전조에서 오만사천팔백원에 입찰하야 명년 팔월 십오일까지는 공사를 완료할 터’(1926년 8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화문 해체 기사)》

광화문은 역사 속에서 주로 비극으로 기록돼 왔다. 조선시대 경복궁 정문으로 만들어졌으나 일제 점령 이후 광화문은 그 앞을 지키던 두 마리 해태와 함께 조선총독부 건물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랬던 광화문이 이제 광장으로 다시 태어나 ‘신(新)광화문 시대’가 열린다. 8월 1일 광화문광장은 마침내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광화문에서 청계광장까지 세종로 557m 구간에 폭 34m 규모로 들어설 이 공간에 1년 8개월간 투자된 총사업비만 415억 원. 시는 광화문광장에 조선시대 육조(六曹) 거리를 재현하는 등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드는 한편 차에서 사람 중심으로, 성장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서울 도심 철학을 바꾼다는 목표를 세웠다.

○ 디지털과 전통의 조화

시는 광화문광장을 ‘디지털과 전통의 조화’란 주제 아래 ‘역사 회복 광장’, ‘육조거리 광장’ 등 테마별로 구성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최첨단 정보기술(IT)의 융화 속에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해치마당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길목 벽면에는 대형 ‘해치 IT 보드’가 걸렸다. 행사 안내를 비롯해 시민 의견, 스포츠 경기 등이 중계된다. 광화문광장 양 옆으로는 365m 길이의 ‘역사 물길’이 흐른다. 2cm 수심 아래로 1392년 조선 건국부터 지난해까지의 역사가 연도별로 새겨져 있다. 가장 화려한 부분은 ‘분수 12·23’.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에 키 작은 거품 분수와 18m까지 올라가는 직사 분수 노즐 300여 개를 설치했다. 푸른색과 은백색의 조명이 이순신 장군이 활동하던 바다 무대를 연상시킨다. ‘분수 12·23’은 명량대첩에서 왜선 133척을 맞아 대승을 거둔 ‘12척’의 배와 ‘23전 23승’이란 불패신화를 이룬 충무공의 기상을 상징한다.

광화문광장의 또 다른 볼거리는 국내 최초로 도입된 ‘플라워 카펫’. 광화문 바로 앞 광장 시작 지점에 가로 17.5m 세로 162m 규모로 조성된 직사각형의 꽃밭이다. 서울시는 이 공간에 조선의 한양 천도일인 1394년 10월 28일부터 광화문광장 개장일인 2009년 8월 1일까지의 날짜 22만4537일을 상징해 그 숫자만큼의 꽃 화분을 심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진다는 뜻의 전통 문양인 ‘여의두문’을 응용했다.

○ 주변 광장과의 네트워크

광화문광장은 서울광장, 숭례문광장,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광장 네트워크’의 마지막 연결고리다. 광장들이 들어선 이후 도심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걸어 다니기 편해졌다는 것. 시는 광장들을 활용해 자동차보다는 보행자가 위주가 되는 도심으로 자연스레 재디자인한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광장 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시민들이 직접 보행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된다. 시는 광장 개장에 앞서 광장들을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도보 관광 코스 ‘도보 투어’(가칭)를 계획 중이다. 경복궁부터 광화문광장, 서울시청, 숭례문까지 역사 속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 문화가 흐르는 ‘전시 공간’으로

광화문광장은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중앙청사, 외교통상부, 주한미국대사관 등과 인접해 있다. 자연스레 새로운 ‘시위 메카’가 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면서 개장 전부터 사용 규정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시는 광장 사용 조건을 엄격히 규정해 불법 폭력 시위를 막겠다는 의지다.

시가 현재 구상 중인 광화문광장의 기본 콘셉트는 ‘전시(展示)’ 위주의 공간이다. 서울광장이나 청계광장은 어느 정도까지 소음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문화 행사를 진행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광화문광장은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이용심 서울시 도심활성화담당관실 1축정비팀장은 “숭례문광장은 문화재 테마 공간으로 살리고 광화문광장은 조용한 전시 공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다채로운 문화행사 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車 위주서 보행자 중심 거듭날 것”▼
오세훈 서울시장

“샹젤리제나 트래펄가광장 못지않은 광화문광장이 생겨 이제 서울시민의 자부심도 한층 커지게 됐습니다.”

30일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은 개장을 이틀 앞둔 광화문광장에서 현장 점검을 하며 광장 조성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 시장은 “광화문광장이 완성돼 청계천, 서울광장,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보행도로가 형성돼 시민이 한층 수준 높은 문화적 삶을 영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 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수문장 교대식과 세종대왕 어가행렬 등 문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문화재청과 협의 중이다. 청계광장, 서울광장과는 보행로로 연결하고 세 광장에 통일된 모양의 안내판을 설치해 세 광장을 쉽게 걸어서 다닐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오 시장은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가 차량, 개발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집회 우려에 대해선 “관련 조례를 만들어 불법 과격 집회가 열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교통소통과 안전사고 등을 고려해 광장시민위원회에서 행사 개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세종로를 통과하는 광역버스 등의 노선을 축소하는 대책을 추진해 교통 혼잡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국가 중심축 바로잡는 데 주안점”▼
신현돈 설계 책임자

“탁월한 조망과 역사성을 면면히 이어온 광화문 거리의 잠재력을 다시 살려내고, 흔들렸던 국가 중심축을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광화문광장의 설계 책임자인 서안조경설계사무소 신현돈 소장(50·사진)은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신축’이 아닌 ‘재건축’이라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원래 열린 공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며 ‘닫힌 공간’으로 변한 만큼 다시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우리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것이 광화문광장 설계의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또 “세계 어느 도시의 조망도 북악산과 경복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광화문광장의 조망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며 “은행나무와 자동차들로 가렸던 광화문의 ‘경관 브랜드’를 되살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의 ‘하드웨어’가 갖춰진 만큼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소장은 “도심 속의 ‘오픈 스페이스’인 광장에서 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 욕구”라며 “광화문광장이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흡수하면서 다양한 도시 문화와 결합될 때 진정한 국가 중심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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