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파월의 충고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8분


1957년 여름 미국 뉴욕시립대 학생이던 콜린 파월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 ROTC 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는 6주간의 훈련 평가에 따라 D중대 최고사관이 됐다. 전체 최고사관은 코넬대 출신 백인이었다. 캠프를 떠나기 전날 백인 하사관이 그를 불렀다. “자네, 왜 캠프 최고사관이 안 되었는지 알고 싶나?” 파월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대답했다. 하사관이 말했다. “남부 ROTC 교관들이 대학으로 돌아가 최고사관이 검둥이였다고 말할 것 같나?”

▷이는 2001∼2004년 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을 지낸 파월이 겪었던 기나긴 인종차별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19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군에서의 인종차별을 끝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군대는 일반사회보다는 인종차별이 덜했지만 흑인은 장교라도 백인과 같은 교회를 다닐 수 없었고 한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많은 흑인들이 왜 자신을 차별하는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파월은 자서전에서 회고한다.

▷파월 전 장관이 최근 미국 전역을 인종차별 논란으로 들끓게 한 하버드대 흑인 교수 체포사건에 대해 CNN 대담프로에서 “경찰에 맞선 교수의 잘못”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흑인인 루이스 게이츠 교수가 밤늦게 자택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자 도둑으로 오인한 이웃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게이츠 교수를 체포한 것이 사건 개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엔 경찰을 나무랐다가 곧이어 경찰에 사과하며 어제 두 당사자를 백악관에 불러 ‘화해의 맥주파티’를 열었다.

▷이 문제가 시끄러운 것은 흑인 대통령 탄생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인종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월 전 장관이 흑인에게 참을성을 주문하고 흑인 젊은이들에게 “경찰이 조사하면 일단 협조하라”고 충고한 것은 사려 깊은 모습이다. 인종이건 성별이건 차별을 당하는 측이 피해의식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되며, 저항과 대결구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파월은 던지고 있다. 뉴욕 할렘 출신인 그가 흑인이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걸프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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