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지형]사실을 존중하는 사회로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8분


지난해 미국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대학입학시험문제로 출제됐다. 대학과목선이수제(AP) 세계사 과목의 지문으로 채택된 것이다. 지문 내용에 따르면 9개 세계기업이 서울올림픽의 파트너(TOP)로 선정되었으나 한국 기업은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다. 한국은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 기업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결국 미국과 일본 등의 기업이 기업 및 제품 브랜드 경쟁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 지문에는 ‘일본경제신문’의 한 사설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 논술시험은 올림픽에 대한 역사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이 시험은 주어진 올림픽 관련 지문을 활용해 나름대로 논제를 구성하는 논술문제였다. 이 논술의 관건은 지문의 출전과 저자의 관점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후에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 발표자는 논술 서술에서 서울올림픽 기사의 출전이 한국 언론이 아니라 일본 언론이라는 점,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갈등을 빚는 관계로 종종 서로 평가절하(平價切下)하기도 한다는 점, 한국 기업에 대해 일본 언론이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세계평화와 우정, 진보 등 올림픽의 이상(理想)이 현실에서 항상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사실이 실종된 일부 TV프로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事實)’의 발견이다. 그래서 사료 비판은 언제나 역사연구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모든 진술(陳述)에는 사실과 의견(해석)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해석 없이 사실만을 다룬 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술에 담긴 해석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사실의 발견에서 비판적 성찰능력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조건이 된다. 따라서 논술이 아니라 선다형 문제였다면, 수험생의 비판능력에 대한 평가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역사학이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우리의 교과과정에서 자기주도적 비판능력의 배양은 거의 불가능한 학습목표다.

더욱이 오늘날은 이미지(영상)의 시대다. 이미지는 상품 판매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언어이자 사고방식으로 작동한다. 진술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미지 또한 조작된다. 이미지의 시대에는 이미지가 주요 사료가 되고 사료 비판의 연구대상으로 각광받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지는커녕 문자에 대한 비판적 분석조차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성 짙은 각종 언론보도와 정보홍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사실에 도달함으로써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 객관적 자세를 견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묶인 토끼를 낚아채는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야생이라고 방영한 KBS의 다큐 프로그램, 시청자 의견을 상습적으로 조작한 MBC의 100분 토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파동 등은 사실이 실종된 우리 문화의 단면일 뿐이다. 독자의 편의성과 가독성(可讀性) 제고라는 미명 아래 인용문에 없는 내용을 붙여 넣거나 문법에 맞춰 인용문을 임의로 수정하는 기사(記事) 역시 사실의 고유성과 엄존성(儼存性)을 훼손한다. 역사학의 아버지 레오폴트 폰 랑케가 강조했던 것처럼, 사실이란 ‘있는 그대로’를 서술할 때 비로소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이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에드워드 핼릿 카의 격언은 역사 교과서의 서두를 장식할 만큼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가 진정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끝없는 대화’라는 점이다. 진정한 사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실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비판적 성찰과 한두 명의 개인이 아니라 역사가(歷史家)라는 전문가 집단의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송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송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아니라 법정변론의 결과에 의해 사실에 도달한다. 그래서 제1심과 항소심을 사실심(事實審)이라 부른다. 아무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무시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는 피의사실이거나 소환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의 중간발표는 때로 사건의 진정한 사실을 영원히 미궁에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기도 한다.

비판적 성찰교육 체계 세워야

사실의 발견은 집단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실에 대해 역사학계가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발견을 위한 비판적 성찰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잠정적 사실에 대해 유보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와 톨레랑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전문가들의 집단이성이 더욱 발휘될 수 있는 견제 및 점검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근거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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