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LG 박병호의 야구 스토리

  • 입력 2009년 7월 30일 0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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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가능성 유망주 국민타자 무한도전!

2005년 초. LG는 오랜만에 나타난 ‘오른손 거포’에 큰 기대를 품었다. 성남고 재학시절, ‘4연타석 홈런’을 때려 화제가 됐던 이 거포는 LG의 오른손 거포 갈증을 풀어줄 희망으로 떠올랐다. ‘잠실라이벌’ 두산에 김동주라는 걸출한 거포가 있었던데 비해, LG는 역대로 이렇다할 오른손 장타자를 보유하지 못했던 터. 그래서 LG가 그에 거는 기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박병호(23). 올해 프로 5년째, 상무 유니폼을 입었던 최근 2년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프로 3년째를 보내고 있는 그는 지금도 ‘유망주’에 불과하다. 언제나 가능성만 무한대, 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한…. 주변에서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스스로가 느끼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큰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박병호를 만났다.

○인터넷 비난 댓글에 눈물·콧물…“이것이 프로구나”

루키 시절이던 2005년 어느 날. 하루는 자신을 욕하는 인터넷 댓글을 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팬들에게 욕먹을 수 있는 게 프로’라는 걸 그 때 처음 깨달았고, 마음 먹은대로 야구도 되지 않던 그는 결국 한강 둔치를 찾았다. 술 한잔 못하지만 맥주 캔을 미친 듯이 들이켰고, 그는 마신 양의 두세배를 토해내며 눈물 콧물을 다 쏟았다. “살아남아야 한다”며 눈물을 훔쳤고, 그는 그렇게 조금씩 프로에 익숙해져 갔다.

○“더 강해져야 해”…군 입대 결정

2006년 페넌트레이스 8게임을 남겨뒀을 때. 왼쪽 손목이 좋지 않았던 그는 2군행 통보를 받으면서 당시 양승호 감독대행과 상의, 군 입대를 결정했다. 회피가 아닌 ‘내 자신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싶었다. 곧바로 상무에 입대한 그는 이듬해 초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다쳤다. 통증이 오면 쉬고 그치면 다시 훈련하고를 반복하다 엉겁결에 1년이 지났고, 2008년 뒤늦게 찾은 손가락전문병원에선 “왜 이제 왔느냐”고 그를 다그쳤다. 결국 박병호는 지난해 2월 수술을 했고, 6월에 복귀하라는 병원측 의견을 무시하고 4월부터 통증을 이겨가며 게임에 나섰다.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굽어진 손가락… 통증 참아가며 2군 구슬땀

조기 복귀의 상처로,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제대로 쭉 펴지지 않는다. 한쪽으로 상당히 굽었다. 일종의 평생 장애를 얻었지만 야구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 그는 손가락 통증 속에서도 2군 북부리그에서 타율 0.334에 24홈런 74타점으로 홈런·타점왕에 올랐고, 부푼 가슴을 안고 지난해 말 전역했다. ‘이제 내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팀에 복귀하고 다시 맞은 올 스프링캠프. 어느 해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김재박 감독 역시 그를 높이 평가하며 “팀의 기둥으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공개적으로 내비칠 정도였다.

○시즌 개막 2주 만에 2군행… 또 다시 시련

의기양양하게 시작한 올 시즌, 희망을 꿈꿨지만 시범경기 후반부터 페이스는 뚝 떨어졌다. 그 좋던 밸런스도 깨졌고, 타석에선 잡생각만 늘었다. 개막 엔트리에 들었던 그는 결국 부진을 거듭한 끝에 2주만에 2군에 내려갔고, ‘하염없는 2군 생활’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가 1군에 다시 복귀 명령을 받은 것은 6월 23일. 프로 1,2년차일때도 이토록 2군에 오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올해 안 되겠구나. 차라리 2군에서 착실히 부족한 것을 채우겠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갑작스런 1군 콜은 또 한번의 기회로 찾아왔다.

○69일 만에 1군 복귀… 홈런 쾅쾅! ‘화려한 신고식’

6월 24일 1군 복귀전. 69일만에 다시 1군 무대에 선 그는 2홈런을 몰아치며 강력한 복귀 신고를 했다. 다른 선수도 아닌, 박병호가 그렇게 복귀전을 치르자 신문 방송에선 난리가 났다. 다음 날 게임 전, 그에게 취재진이 몰려들자 한 선배가 이렇게 얘기했다. “이승엽이라도 왔나?” 그는 창피하고 부담스러웠다. 한 게임에서 잘했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박병호라서 받아야 하는 시선’임을 알면서도 싫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일부러 단답식으로 답하고 마음을 열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포기하지 마라”…가슴에 새긴 대선배의 조언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이었던 지난 21일 광주 KIA전. 1루 수비를 하고 있을 때 주자로 나선 이종범이 이런 얘기를 하더란다. “절대 포기하거나 나태해지지 마라. 서른 전에 좌절하고 포기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안 되면 되게 해야한다. 자신감을 가져라.” 짧은 순간, 비록 상대팀이지만 대선배가 던진 한마디는 그 어느 말보다 뇌리에 박혔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이종범의 말을 되뇌고 또 되뇐다.

○“김동주 능가하는 ‘LG의 4번타자’ 꼭 해내야죠”

그가 프로에 몸 담고, 아니 야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처음엔 부담도 되고 중압감에 힘들어했지만 이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크다. LG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기회를 많이 주고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동주 선배처럼, 김태균(한화) 이대호(롯데) 선배처럼 팀을 상징하는 4번 타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되고 싶다고 모두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땀을 흘린다.”

○대한민국 최고 1루수를 향한 도전은 계속된다

고교시절까지 그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발, 아니 멀찌감치 앞서가는 선수였다. 주변에선 그를 부러움 섞인 눈으로 쳐다봤고, 그는 여유롭게 ‘즐기는 야구’를 했다. 2004년 대통령배대회 화순고전∼휘문고전, 두 경기에 걸쳐 4연타석 홈런을 때린 것은 그가 고교시절까지 만들어낸 ‘수많은 영광’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프로선수 박병호’는 아직도 자신이 멀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인터뷰 때 그가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던진 첫 마디는 “야구도 못하는 저를 왜…”였다. 스스로 인터뷰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에겐 마음 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한 큰 꿈이 있다. 김동주, 김태균, 이대호 등 쟁쟁한 선배들을 넘어 이승엽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 대표 1루수는 박병호’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다. LG의 중심 타자를 넘어 대한민국 간판 스타 자리를 꿈꾸는 박병호. 무한가능성을 가진 그의 앞날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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