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호]거짓 투서의 사회적 비용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인사철만 되면 청와대에 투서가 넘쳐난다. 누가 이런 저런 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정보가 조목조목 정리돼 인사권자 앞으로 배달되곤 한다.

투서는 좋은 기능도 한다. 그것을 통해서 인사권자의 정보망에 포착되지 않았던 결점을 알아낼 수도 있고 후보자의 거짓말이 밝혀지기도 한다.

인사철 되면 몰리는 음해-비방

하지만 부정적 측면 역시 만만치 않다. 투서가 많이 들어오는 후보자는 내용의 진위를 떠나 사전 검증을 통과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인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투서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일일이 확인할 시간이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투서가 많은 후보자에게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 것이다.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몰랐던 약점이 드러나면 정권 자체가 치명타를 맞는데 왜 안 그러겠는가.

투서자는 바로 그 점을 노린다. 자신의 적을 떨어뜨리면 그뿐인 것이다. 평상시 투서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조작됐다면 사기죄로 고소·고발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감히 거짓 투서를 하지 못한다. 익명의 투서자를 확인하려면 수사를 해야 할 텐데, 일단 인사를 마치고 나면 그런 수고를 할 인사권자는 없을 것이다. 투서만큼 경쟁자를 누르기 쉬운 방법도 없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거짓 투서가 끊이지 않는다. 거짓 투서 때문에 멀쩡한 후보자가 탈락하거나 또는 아예 ‘더러운’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그런 자리는 처음부터 고사하는 사람도 많다. 거짓 투서가 넘쳐날수록 장관 자리에 유능한 사람을 앉히기도 어려워진다.

아직도 거짓이 횡행하는 우리의 사정이 통탄스럽긴 하지만, 기실 거짓은 생물의 본성이기도 하다. 카멜레온은 주변의 색깔에 따라 몸 색깔을 바꿔 천적을 속인다. 아귀는 몸에 미끼를 달고 다니면서 먹잇감을 유인한다. 인간도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거짓말을 같이 시작한다. 정직함은 배워야 하는 가치이며, 문명 세계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다.

이웃집 아저씨에게 빌려온 책을 비에 젖게 만들었지만 정직하게 고백하고 대신 일로 갚았다는 링컨 대통령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진부해진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제법 문명화가 된 것 같다. 관가의 인사철에는 아직도 야만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가장 나아진 곳은 상업 세계다. 이제 우리의 상업 세계에서는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불량식품을 걱정해야 할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개발도상국에 가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문명화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기억해 보면 가장 지독한 거짓말쟁이는 장사꾼들이었다. 단골 가게 없이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면 바가지 쓰기가 다반사였다. 환불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교환조차도 잘 안되던 것이 이 땅의 상업세계였다.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곳이 오늘날처럼 변한 것은 정직은 보상받고 거짓은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은 가게에는 소비자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정직해야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고 그런 가게일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거짓이 보상을 받는 곳에는 여전히 거짓이 횡행한다. 보험사기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기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짓으로 보험금을 받아 편히 살려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짓 투서 역시 마찬가지다. 거짓 투서를 해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일단 하고 보는 것이다. 거짓 투서자를 어떻게 가려내고 어떤 방법으로 어떤 불이익을 줘야 할까. 문명사회로 한발 더 나가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