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 높으니 세금 더 내라?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정부, 내년부터 가전제품에 ‘효율’ 아닌

‘용량’ 기준 과세 추진 논란

과세목적 사치세로 변질… 에너지 절약정책 역행

日선 효율 높은 제품 구입때 현금성 포인트 제공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1등급 냉장고와 세탁기에 세금을 매기겠다.’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정부가 이를 실제로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대부분 에너지 효율 1등급 제품인 대용량 냉장고, 드럼세탁기, 대형TV, 대용량 에어컨에 5∼10%의 개별소비세를 매길 방침이다. 당초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낮은 가전제품에 매기기로 했던 개별소비세를 대용량 제품에 부과하기로 바꾸면서 정작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에 세금이 붙게 된 것.

이에 따라 세제 도입 취지가 퇴색하는 것은 물론 소비 위축 같은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된 현장조사 없이 책상머리에서 설익은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불필요한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가전제품을 잘 몰랐다”

지식경제부는 6월 초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품목에 개별소비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걷은 세금으로 소비자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살 때 보조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낭비를 줄이면서 세수(稅收)도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발표 후 정부의 용역을 받은 한국조세연구원의 시장조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서민들의 필수품인 전기밥솥, 전기다리미 등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난 것. 효율로 따지면 대용량 양문냉장고는 에너지 효율 1등급이었지만 저용량 보급형 냉장고는 4∼5등급이었다. 에어컨, TV 등도 대형·고급형일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돈을 걷어 부유층에 주는 셈’이 되자 정부는 과세기준을 에너지 효율에서 용량으로 바꾸고 서민들이 주로 쓰는 품목은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우리가 가전제품에 대해 잘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으로는 10kg 이상 드럼세탁기, 600∼700L 이상 냉장고, 40∼50인치 이상 대형TV, 15평형 이상 에어컨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무색해지는 세제 도입 취지

전문가들은 가전제품 개별소비세의 목적이 당초 에너지 절약 유도에서 ‘사치세’ 성격으로 바뀌면서 세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지적한다. 2004년에 이젠 사치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에어컨 등 고급 가전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폐지했던 정부가 5년 만에 ‘개별소비세’란 이름으로 이를 부활시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

가전업체들은 8%의 소비세를 매기면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제품 가격이 10% 이상 올라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를 진작하겠다고 해놓고 소비를 위축하는 정책을 내놓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세계적 추세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에어컨, 냉장고, 디지털TV 중 에너지 효율이 높은 모델을 사면 일정액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에코포인트로 돌려주고 있다. 대용량일수록 돌려받는 포인트가 늘어난다. 자동차는 개별소비세를 깎아주면서 가전제품에는 물리겠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경부 관계자는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며 “관계 부처 및 업계와 논의해 이른 시기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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