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공약’ 없는 日총선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각당 구호 아닌 정책 승부,로드맵-재원방안까지 제시

언론도 정치싸움 안 다루고 공약 실현가능성 파헤쳐

“표부터 모으고 보자” 안통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일본 총선은 철저하게 공약경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든 정당은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를 향해 지지를 호소한다.

○ 구호가 아닌 실질 공약

27일 민주당이 발표한 공약은 21개 분야 350가지 정책과제를 담은 ‘정책집 2009’와 이 가운데 55개 핵심 추진사항을 모은 ‘정권공약’으로 이뤄져 있다.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가령 중학생까지 월 2만6000엔(약 34만3000원)의 아동수당 공약을 보면, 매년 5조5000억 엔이 필요한데 재원 마련이 힘들기 때문에 내년에는 절반만 주고 2011년부터 전액 지급하겠다는 식이다. 그 결과 월소득 500만 엔인 가정의 경우 아동이 없으면 연간 3만8000엔을 더 부담하고 아동이 2명이면 48만7000엔이 이득이라는 수치도 제시했다.

모든 공약에 대해서 이행일정표를 제시해 임기 4년 동안의 로드맵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2013년의 경우 공약이행을 위해 16조8000억 엔이 필요한데 공공사업 축소와 보조금 개편 등 낭비요인 제거로 9조1000억 엔, 특별회계 운용수익과 정부자산 매각으로 5조 엔, 소득공제 폐지 등으로 2조7000억 엔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언론 사회단체, 공약(空約) 아닌 공약(公約) 경쟁 유도

주요 정당이 공약을 내놓으면 언론은 이를 심층 분석해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원의 적정성 여부를 철저히 파헤친다. 주요 신문은 민주당 공약을 전면을 할애해 게재하고 4, 5개 면에 걸쳐 심층 분석했다. AP와 AFP 등 외신도 민주당 공약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국제적 관심도 높다.

그러자 민주당의 책임의식도 높아져 과거보다 현실적인 공약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얼마 전까지 정치권과 언론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의 정치자금 허위기재 문제를 거론했으나, 총선 일정이 확정되자 철저히 공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은 정치싸움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경단련(經團連)은 조만간 자민당과 민주당 간부를 초청해 공약점검 행사를 열 예정이다. 총선이 건전하고 비판적인 공약경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 구호성 눈가림 공약 설 땅 없어

정당 공약에 대해 상대 당과 언론 경제계 학계는 현실성이 있는지, 기존의 당 방침과 달라진 게 있으면 왜 달라졌는지를 파고든다. 공약 이행을 위해 누가 얼마만큼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구호성 공약으로 일단 표부터 모으고 보자는 정당은 견디기 어려운 구조다. 민주당이 ‘변절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대미외교 등을 현실성 있게 수정한 것은 선명한 구호보다 실현 가능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민주당 공약에 대한 비판이 많다. 예산 절약으로 9조1000억 엔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등 재원 조달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재무상은 “표를 얻기 위한 낚시질”이라고 혹평했다.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공약에 대해서는 철도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까지 반대해 온 국채 발행과 소비세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재원 보충을 위한 추가 조치의 여지를 남겼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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