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바꿔 놓은 ‘제네바 협약’ 60돌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내전-테러엔 사각지대… 변화 갈림길

“이런 고문과 학대는 제네바협약 위반입니다.”

9·11테러 용의자 라크다르 부메디에네 씨(43)의 변호를 맡았던 로버트 키르시 변호사는 지난해까지 법원과 언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미 정부가 부메디에네 씨를 정식 재판절차도 없이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7년 반이나 수감하고 고문, 학대한 것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

이처럼 국가 간 전쟁과 국제적 유혈분쟁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제네바협약’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전시 부상자와 민간인의 보호, 포로의 인권 보장 등을 규정한 제네바협약은 그동안 ‘전쟁을 바꿔놓은 협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글로벌 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라는 개정 요구도 거세다.

○ 국제 분쟁 처리의 ‘바이블’

전쟁 희생자 보호에 관한 최초의 협약은 국제적십자사의 창설자인 앙리 뒤낭의 제안으로 1864년 만들어졌다. 이후 3차례의 개정과 추가 협약을 통해 1949년 8월 12일 4개 협약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제네바협약’으로 완성됐다. 무려 400개가 넘는 조문은 성문화된 전쟁 법규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가입국은 194개국에 이른다.

제네바협약이 탄생한 스위스에서는 올해 60주년을 맞아 최근 관련 서적 출판을 비롯한 각종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각국 적십자사와 비정부기구(NGO)들도 속속 이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공동으로 제네바협약이 직면한 과제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 중이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가 발간하는 월간지 ‘월드투데이’ 최신호는 이런 움직임을 전하면서 “제네바협약이 60주년을 맞아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 내전 테러, 협약 적용 사각지대

제네바협약의 개정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문제다. 2006년 존 리드 영국 국방장관이 연설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협약 채택 이후 3개의 추가 의정서를 통해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충돼 왔지만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최근 일어나는 많은 전쟁이 제네바협약의 적용 대상인 ‘국가 간의 국제전쟁’이 아닌 한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반군들의 경우는 포로로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기본적인 여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급증하는 테러 문제도 과제로 떠올랐다. 억류된 테러 용의자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기 때문에 제네바협약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여부 및 해결 방안을 놓고 매번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알 카에다를 상대로 벌이는 대테러 전쟁의 경우도 제네바협약이 규정한 ‘국제 전쟁’에 해당되는지가 모호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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