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준모]‘뒷간 시절’의 노사관계 이젠 끝내야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집에서 부엌과 화장실은 가족의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 공간이다. 전통 가옥의 화장실은 뒷간이라고 불려왔다. 뒷간은 근처에만 가도 냄새가 풀풀 나고 밑이 뚫려서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뒷간은 모두의 건강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농사짓는 데 쓰이는 거름을 제공하는 중요한 곳이어서 폄훼해선 안 된다. 뒷간은 수세식으로 개량되면서 점차 집안으로 진입했다. 냄새도 덜 나고 세수, 양치, 샤워 심지어 화장까지 할 수 있도록 기능이 다양해졌다. 아궁이가 있는 전통가옥의 부엌도 싱크대와 식탁이 있는 현대식 주방으로 진화해왔다.

기업을 집으로 본다면 기업 내 노사관계는 부엌과 화장실로 볼 수 있다. 19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 경영자들은 노사관계를 뒷간으로 취급했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본채에서 가급적 멀리하고 싶은 곳이고, 피로가 누적된 근로자들과의 갈등을 처리하는 ‘기업 해우소’ 같은 곳이었다. 갈등을 그때그때 해소하는 시스템도 없었고 1년에 한 번 분뇨처리비를 지불하듯 대증적인 조치만 취하면 그만이었다. ‘노사불이(勞使不二)’라는 슬로건은 술자리의 최면용이었고, 노사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었다. 기업 내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외부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았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였고, 사건사고 없이 지나도록 하는 것이 인사노무 관리자의 주된 역할이던 시절이었다.

노조 관련법 더이상 유예 말라

주거공간이 아파트 등 현대식으로 바뀌면서 좌변 수세와 세정장치가 도입되듯이 노사관계도 과학화한다. 하지만 아직도 뒷간 식 노사관계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허용될 수 없는 관행과 제도를 벗어버리지 않는 한 노사관계의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어떤 명분으로든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은 일찌감치 시행됐어야 한다. 회사를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노조를 위해 일하는 노조 전임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고 외국에도 유례가 없다. 기존 노조에만 유리하도록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

복수노조 허용과 사용자에 의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법제화되고도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걸쳐 13년째 시행이 유예돼 왔다. 뒷간 식 노사관계 관행의 부작용이 증폭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정부, 사용자, 근로자 측은 복수노조 허용 등을 놓고 대치 상황을 연출하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유예에 합의하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취해왔다. 결국 13년 유예 대하사극의 주연은 당시 정치권, 정부 그리고 노사인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유예는 안 된다. 또다시 유예하자는 의견은 우리의 노사관계를 뒷간 식으로 방치한 채 무원칙,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정치담합을 반복하자는 주장과 마찬가지이다. 복수노조 금지로 인해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아온 우리나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각종 국제무역협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위험은 누가 감수할 것이며 더욱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하에서 연간 4300억 원이나 되는 전임자 인건비의 부담을 안고 장차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해 갈 것인가.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면 그 피해는 조합원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우리는 선진화를 위해 뒷간 시절의 노사관계 관행을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사용자가 지불하는 전임자 임금과 각종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뒤에서 비난하는 뒷간 식 노사관계는 글로벌 관행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논하기 부끄럽다. 뒷간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전략이나 가족 내 계파 만들기에 몰입해서도 그 집이 잘될 리 만무하다. 노사관계 선진화는 부엌과 화장실에서 청결규칙, 구성원별 사용시간, 가사 업무분담 등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합리적인 규칙에 순응하는 책임성과 투명성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선진국의 글로벌 관행 정착을

노조 전임자 제도도 뒷간시절의 관행인 권리 주장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양질의 서비스를 조합원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산업재해 예방, 노사협의, 고충처리, 그리고 ‘교섭의 최소한의 실제 사용시간’만을 근로시간에서 공제(time-off)해 주는 선진국들의 글로벌 관행이 정착돼야만 한다. 뒷간 식 노사관계가 무조건 집안에 들어온다면 가족들, 즉 국민에게 폐만 끼친다. 냄새가 풀풀 나는 뒷간이 집안에 복수(複數)로 들어선다면 더더욱 큰일이 아니겠는가.

조준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경제학 trustcho@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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