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혜진]또 인명희생 부른 건설업계 ‘안전불감증’

  • 입력 2009년 7월 28일 02시 50분


25일 경기 의정부시의 경전철 공사 현장 사고로 인부 등 13명이 숨지거나 다쳤다는 뉴스를 접하고 2년 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민자역사의 사고가 떠올랐다. 높이 25m, 무게 40t의 대형 크레인이 승강장 안쪽으로 넘어지면서 플랫폼의 10대 여고생 등 2명이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현장에서 만난 여고생의 어머니가 “우리 딸이 얼마나 무겁고 아팠겠냐. 착하기만 한 딸이 왜 이런 끔찍한 사고를 당해야 하느냐”며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청량리 사고의 원인은 집중호우로 파인 땅을 제대로 메우지도 않은 채 크레인을 무리하게 이동시킨 ‘안전 불감증’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크레인에 매달린 철제빔이 떨어져 50대 행인이 숨졌고 이달 초에는 경의선 서울시내 구간에서 크레인이 철로를 덮치는 등 비슷한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사고들이 세계적으로 시공력을 인정받은 굴지의 건설업체들을 보유한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고 원인은 외국인 인부가 특별한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중장비를 조작하거나 현장관리자가 감독을 소홀히 하는 등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정부시 현장의 크레인도 4시간 교육을 받았을 뿐인 중국 동포가 조작했다. ‘건설 선진국’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낯 뜨거울 정도로 너무 후진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저입찰제 등 업체 간 과도한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 보니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한두 시간 조작법을 익힌 외국인 근로자가 중장비를 몰거나 관리자 없이 야간공사를 강행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불법 체류자나 산업연수생을 자주 동원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출장을 다녀온 싱가포르에서는 ‘사전작업허가제’ 덕분에 안전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제도는 깊이 1.5m 이상 땅을 파거나 2m 이상 구조물을 들어올리는 등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할 때 공사의 전 과정을 미리 승인받도록 되어 있다. 인부들은 반드시 승인받은 범위 안에서 공사하고 정부 관계자는 현장에 부착된 허가서에서 이를 확인한다. 싱가포르는 임시 가설물까지 모두 정부의 허가와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잠재적 위험만 감지돼도 벌점과 벌금을 부과한다.

최근 해외에서 고급 또는 고난도 공사를 완공했다는 한국 건설업체들의 활약 스토리가 자주 들려온다. 외국에서 인정받은 한국 건설이 진정한 ‘명품’ 대접을 받으려면 국내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게 선진적인 안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혜진 경제부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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