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재취업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들

  • 입력 2009년 7월 27일 19시 51분


기업의 노동자 대량 해고가 예상되면 한국에선 노사간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 버스가 가장 먼저 시동을 걸 것 같다. 반면 미국에선 실직자 지원을 위한 주 정부의 신속대응팀이 출동한다. 신속대응팀은 공장 폐쇄나 구조조정으로 50인 이상의 대량 해고 통지가 나오면 노사 대표를 만나 실직자 재취업 알선 및 교육훈련 등을 맡을 협의회를 가동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신속대응팀은 시대적 산물이다. 미국에서 해고는 1960년대 이후 흔해졌고 1980년대 들어 대대적인 다운사이징(감량경영)으로 대기업의 ‘10% 해고’가 유행이었다. 이런 위기 국면에 도입된 게 해고 대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기업과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전직(轉職)지원제도다. 1980년대의 유럽, 1990년대의 일본도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역시 대량 해고가 빈번하던 시기였다.

한국은 고도성장기엔 대량 해고를 해외토픽에서나 보는 ‘선진국병’ 정도로 여겼다. 11년 전 외환위기로 일자리 128만 개가 사라지자 한동안 대책을 논의했지만 이후 경기회복 분위기에 걱정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노조는 경영진이 정리해고를 아예 하지 못하도록 얽어놓고도 안심하지 못해 2003년부터는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막무가내 경영 간섭에 나섰지만 이는 대량 해고의 위험을 되레 키울 수 있다.

기업주가 정리해고 등 대상자에게 전직교육을 하는 경우 소요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는 전직지원장려금제도가 2001년부터 시행됐지만 대기업 일부가 활용했을 뿐이다. 작년 5월부터 중소기업은 전직교육비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어떤 중소기업은 해고 대상자 교육을 추진하려 하면 당사자와 노조가 ‘해고 결사반대’를 외치며 기업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재취업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체 전직교육서비스가 이미 잘 돼 있는 삼성전자 포스코 등 대기업과 달리 정부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은 장려금을 신청도 못한다니 문제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해고도 피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한 극렬 노조원이 ‘해고는 살인’이라고 써놓은 것처럼 극단적으로 해석해 투쟁만 할 게 아니라 전직교육 등으로 해고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진정 노동자를 위하는 조직이라면 ‘결사반대’ 구호와 ‘죽봉’을 내려놓고 전직교육서비스 활성화를 돕는 게 우선이다.

올해 상반기 해고나 권고사직 등으로 직장을 떠난 비자발적 이직자가 109만 명으로 전체 이직자의 47%나 됐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특히 40, 50대 중고령자는 한 번 실직하면 재취업이 어렵고 자칫 유휴 인력화하기 쉽다. 이들은 회사를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삶의 중심으로 여기고 살던 마지막 세대다. 중고령 이직자들이 길거리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려면 이직도 줄여야겠지만 그보다는 전직교육을 활성화해 해고자의 실직 기간을 가급적 줄이는 게 최선이다.

3월 22일부터 권고사항으로 시행 중인 모집 및 채용에서의 연령차별 금지도 빨리 정착돼야 재취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 서울 여의도의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임수정 선임컨설턴트는 “기업이 제시하는 연령대보다 나이가 많은 구직자가 취업에 성공한 사례는 올해 들어 딱 한 건”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채용 거절 사유는 다양하지만 나이를 결정적으로 문제 삼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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