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밀양은 悲에 젖어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밀양연극촌이 밀양의 잊혀진 역사를 감동적으로 되살려낸 대중가극 ‘약산 아리랑’. 사진 제공 밀양연극촌
밀양연극촌이 밀양의 잊혀진 역사를 감동적으로 되살려낸 대중가극 ‘약산 아리랑’. 사진 제공 밀양연극촌
공연예술제 개막작 ‘약산 아리랑’ 시대아픔 조명 빗속 공연 성황

23일 오후 7시 반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으로 꼽힌다는 경남 밀양시 영남루는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이고 맞은편 강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남루를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남천둔치야외극장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4000석 규모의 좌석을 꽉 채웠다. 올해 9회를 맞은 밀양여름공연예술제 개막작 ‘약산 아리랑’(박현철 작·남미정 연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밀양연극촌’ 식구 60여 명이 총출동한 이 작품은 약산 김원봉(이광용)을 중심으로 밀양 출신 독립투사의 삶을 대중가극으로 펼쳐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펼쳐진 밀양장터, 윤세주(이종민) 등 만세운동의 주역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던 밀양역, 그들을 포함해 창단 당시 13명 단원 중 8명이 밀양 출신이었던 의열단의 창단, 부산·밀양 경찰서 폭파 등 의열단의 눈부신 활약….

어릿광대로 분한 변사가 해설을 맡고 춤과 노래가 극의 중심을 이루는 악극 형식으로 숨 가쁘게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을 때 끝내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10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떴지만 대부분 관객은 우의를 챙겨 입은 채 끝까지 객석을 지켰다.

무대 위에선 자신들도 잊고 살았던 밀양인의 숨겨진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일까. 관객은 점차 공연과 한몸이 됐다. 만세운동을 펼칠 땐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함께 외쳤고, 윤세주와 훗날 김원봉의 아내가 되는 박차정(김소희)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을 땐 “아이고, 고약한 놈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 사이에 약산의 막내여동생 김약봉 여사(77)도 앉아 있었다.

작품은 민족주의 좌파로 분류된 약산을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민족주의 우파의 대표인물인 김구,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주인공인 공산주의자 김산과 논쟁을 벌이면서 “어떤 이념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밝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런 신념에 입각해 중국공산당의 팔로군이 아닌 광복군에 가담했던 약산은 광복 후 남한으로 귀국했다가 빨갱이로 몰려 화장실에서 내의 바람으로 친일경찰에 연행된다. 작품은 그런 그가 결국 38선을 넘어 월북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때 흐르는 노래가 밀양아리랑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약산 스스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밀려 넘어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 것이다. 월북한 약산이 1958년 숙청당해 결국 남북 역사에서 지워진 독립투사가 됐음을 상기한다면 밀양아리랑의 가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고향 땅에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약산의 비원(悲願)으로. 밀양여름공연축제는 8월 2일까지 계속한다.

밀양=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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