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7시 반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으로 꼽힌다는 경남 밀양시 영남루는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이고 맞은편 강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남루를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남천둔치야외극장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4000석 규모의 좌석을 꽉 채웠다. 올해 9회를 맞은 밀양여름공연예술제 개막작 ‘약산 아리랑’(박현철 작·남미정 연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밀양연극촌’ 식구 60여 명이 총출동한 이 작품은 약산 김원봉(이광용)을 중심으로 밀양 출신 독립투사의 삶을 대중가극으로 펼쳐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펼쳐진 밀양장터, 윤세주(이종민) 등 만세운동의 주역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던 밀양역, 그들을 포함해 창단 당시 13명 단원 중 8명이 밀양 출신이었던 의열단의 창단, 부산·밀양 경찰서 폭파 등 의열단의 눈부신 활약….
어릿광대로 분한 변사가 해설을 맡고 춤과 노래가 극의 중심을 이루는 악극 형식으로 숨 가쁘게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을 때 끝내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10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떴지만 대부분 관객은 우의를 챙겨 입은 채 끝까지 객석을 지켰다.
무대 위에선 자신들도 잊고 살았던 밀양인의 숨겨진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일까. 관객은 점차 공연과 한몸이 됐다. 만세운동을 펼칠 땐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함께 외쳤고, 윤세주와 훗날 김원봉의 아내가 되는 박차정(김소희)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을 땐 “아이고, 고약한 놈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 사이에 약산의 막내여동생 김약봉 여사(77)도 앉아 있었다.
작품은 민족주의 좌파로 분류된 약산을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민족주의 우파의 대표인물인 김구,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주인공인 공산주의자 김산과 논쟁을 벌이면서 “어떤 이념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밝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런 신념에 입각해 중국공산당의 팔로군이 아닌 광복군에 가담했던 약산은 광복 후 남한으로 귀국했다가 빨갱이로 몰려 화장실에서 내의 바람으로 친일경찰에 연행된다. 작품은 그런 그가 결국 38선을 넘어 월북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때 흐르는 노래가 밀양아리랑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약산 스스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밀려 넘어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 것이다. 월북한 약산이 1958년 숙청당해 결국 남북 역사에서 지워진 독립투사가 됐음을 상기한다면 밀양아리랑의 가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고향 땅에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약산의 비원(悲願)으로. 밀양여름공연축제는 8월 2일까지 계속한다.
밀양=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