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선택 폭 넓어진다]<3>한계 안고 출발한 미디어법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앞뒤로 장애물 ‘열리다 만 방송시장’… 투자 매력 떨어져

○ 지분 소유한도 후퇴 - 지상파 경영권 행사하려면 컨소시엄 구성해야 가능… 대규모 자본투자 막는 셈

○ 사후규제 논란 예고 - 30% 시청점유율 제한, 객관적 기준 마련 어려워… 채널 번호도 SO가 선택

22일 국회를 통과한 미디어관계법은 29년간 지속된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체제를 허물고 매체융합과 디지털화 등 세계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신문과 지상파방송, 케이블 TV 등의 매체 간 겸영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미디어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막판 국회 본회의 통과 전 정치적 고려로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방송 지분을 지나치게 낮게 잡고 사전과 사후 규제도 적지 않게 들어가 ‘규제 완화를 통한 미디어산업의 발전과 독과점 구조의 철폐’ 등과 같은 본래 법 제정 취지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점차 낮아진 방송 지분 한도

한나라당은 지난해 11월만 해도 대기업과 신문에 지상파방송 지분의 2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지분의 49%씩을 주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최종 당론은 종합편성채널 지분만 30%로 줄어든 상태로 정리돼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제안과 자유선진당의 안을 반영하고 야권의 반발을 의식해 최종 수정안에선 지상파가 10%로,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이 30%로 깎였다. 방송 부문 모두에서 후퇴한 셈이어서 미디어산업 발전과 글로벌 미디어기업의 토대 마련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벌써 재개정 논의마저 제기하고 있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 참여 지분이 낮을 뿐 아니라 시청점유율, 매체합산 규정, 경영투명성 제고 등의 규제 조치가 많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관열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0여 년간 다루지 못했던 방송 개혁 문제를 한번에 풀 수는 없기 때문에 일단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를 둔다”며 “하지만 미디어관계법 개정이 막판 정치적인 타협의 산물이 되면서 지분 소유 한도가 낮아지는 등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 지상파 진입 장벽은 걷었는데…

지상파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은 이번 미디어관계법 개정의 핵심이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2월 연구자료를 통해 지상파방송 3사의 2007년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은 44개 지상파 사업자 중 81.1%라고 밝혔다. 방송 3사는 여론 시장에서 57%의 영향력(지난해 언론재단 언론수용자 인식 조사)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왔다. 방송시장뿐 아니라 여론 형성에도 편중 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지상파는 방송에 뛰어들려는 대기업 등에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지만 지분 소유 비율이 10%로 줄면서 가치가 떨어졌고 2012년까진 그나마 경영권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2012년 이후에도 지분 보유 한도가 낮기 때문에 대기업과 신문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도 경영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주주 간 의견이 엇갈릴 경우 운영에 차질이 올 수 있다. 신규 방송사 설립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개국 후 몇 년간 지속적인 운영비 투입이 필요해 10% 지분을 목표로 참여할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방송사 1인의 지분 소유 한도를 30%에서 40%로 늘린 것에 비해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은 10%로, 종합편성과 보도채널의 지분은 각각 30%로 묶은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전, 사후 규제 논란

신문의 경우 구독률 20%를 넘으면 방송 진출이 원천 금지되는 사전 규제 조치가 생겼다. 구독률은 주로 설문조사를 통해 결과가 나올 뿐 아직까지 공신력 있는 구독률 조사 방법이나 기관이 없다. 또 얼마의 구독료를 내야 구독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구독률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후 규제로는 매체합산시청점유율이 도입된다. 개정 방송법에선 한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이 30%를 넘으면 광고를 제한하거나 추가분 프로그램을 위탁하는 방식의 편성 규제를 한다. 신문과 겸영하는 방송의 경우 신문구독률을 10% 이내에서 시청점유율로 환산한 뒤 방송의 시청점유율과 합산해 이 수치가 30%를 넘기면 똑같이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 산하 미디어다양성위원회가 구성돼 신문구독률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하는 기준을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의 매체별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신문구독률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할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매체집중조사위원회(KEK)가 TV 방송의 영향력을 100으로 보고 일간신문은 TV방송 영향력의 3분의 2, 온라인 매체와 라디오는 2분의 1, 프로그램 가이드 잡지는 7분의 1, 대중잡지는 10분의 1로 측정한 바 있다. 이런 통합여론 지배력 산정방식은 법적인 근거가 아닌 행정조치를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정재철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구독률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하는 것은 보통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무엇보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규 종합편성과 보도채널에 대한 의무 전송 기간이 얼마나 될지, 신규 채널 번호가 몇 번이 될지도 관심사다. 의무 전송 기간이 짧을 경우 신규 사업자가 케이블방송사업자(SO)를 상대로 상당한 마케팅비를 필요로 하고 지상파 채널과 먼 채널을 받으면 안정적 시청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종합편성 의무 전송 기간은 (정부의) 정책적인 결정 사항이고 채널 번호는 SO의 고유 권한”이라며 “신규 종편 채널 등이 안정적 여건에서 방송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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