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경찰, 흑인교수 체포 진실게임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23일 미국 오하이호 주 클리블랜드 근처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료보험 개혁에 관한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콧등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클리블랜드=로이터 연합뉴스
23일 미국 오하이호 주 클리블랜드 근처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료보험 개혁에 관한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콧등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클리블랜드=로이터 연합뉴스
경찰관 “상황도 모르면서 인종차별 거론 말라”

오바마 “사실대로 말했을뿐” 논란 확산에 당혹

미국 하버드대 흑인교수 체포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을 띠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종적 선입견을 가진 일선 경관의 행동"이란 결론을 끝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던 사건은 "경찰이 어리석었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코멘트가 휘발유를 뿌린 격이 돼 일파만파 번지는 양상이다.

▽반격 나선 경찰관=하버드대의 저명한 흑인 학자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교수(58)를 16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 자택 현관 앞에서 체포했던 제임스 크롤리 경사(42)는 23일 현지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바마 대통령을 110% 지지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세한 정황도 모른 채 지역에서 벌어진 이슈에 개입해 그런 코멘트를 한 건 중심을 잃은 행동"이라고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크롤리 경사는 그러면서 체포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배낭을 맨 흑인 남자 2명이 이웃집의 문을 밀고 있다'는 주민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하버드 매거진에 근무하는 믿을 만한 시민이다. 나는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했을 때 게이츠 교수는 이미 집안에 있었다. 교수에게 주민신고가 들어와 조사를 해야 하니 잠시 현관 밖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그의 인상착의로 봐 주거침입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그를 밖으로 나오게 해야 했다. 그러나 교수는 '왜? 내가 흑인이어서 그러냐? 정 원하면 너의 엄마하고 얘기하겠다'고 고함쳤다. 이러면 체포될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수갑까지 보여줬다. 교수가 흥분만 가라앉히면 아무 일 없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아 체포했다. 교수는 처음부터 너무 흥분해 있었다. 경찰이 찾아와 묻는 것 자체에 매우 흥분한 것 같았다. 그는 지성을 지닌 사람답지 않게 이상했다."

케임브리지 토박이인 크롤리 경사는 아일랜드계 카톨릭 교도가 많이 사는 동네 출신으로, 경찰학교에서 'racial profiling'(경찰이 흑인 등 유색인종을 차별해 더 의심하고 과도하게 조사하는 행위) 방지를 동료 경찰에게 가르치는 교육 교관으로 5년째 강의하고 있다. 당시 게이츠 교수가 체포된 혐의는 '치안 문란'이었으나 법원 심리 날짜를 잡은 뒤 다음날 석방됐고 경찰은 곧 모든 혐의를 취하했다.

▽어이없어 하는 교수=미국 흑인학의 선구자로 1997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25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던 게이츠 교수는 23일 "오랜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니 열쇠가 없었다.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문을 밀어봤다. 그래도 안돼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집에 들어갔다. 크롤리 경사는 처음부터 매우 불손한 태도로 아무런 설명 없이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했다. 경찰서에 불만접수를 하겠다며 그의 경관 번호를 달라고 했으나 그것도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게이츠 교수는 "나는 인종 관련 험담이나 모독, 위협적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법위에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며 "경찰이 사과 대신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에 말려든 대통령=오바마 대통령은 22일 건강보험 개혁을 주제로 한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 집의 주인인 게 분명한 사람을 체포한 경찰의 행동은 어리석었다"고 코멘트했다. 이어 23일 ABC방송 인터뷰에서도 "내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이는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내 발언은 '지팡이에 의존하는 중년 남자에게 그의 집에서 수갑을 채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크롤리 경사가 뛰어난 경관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심각한 소동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체포한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 경찰서장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으로 우리는 매우 상처받았다. 크롤리 경사의 행동은 인종과 무관한 것이었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행동했다"고 밝혔다.

23, 24일 미국의 숱한 라디오 토크쇼마다 이 문제로 논전이 벌어졌다. 흑인사회는 "게이츠 교수에게 일어난 일은 이미 숱한 흑인들이 당해온 일"이라고 끓고 있다. 반면 경찰과 보수진영은 "정당한 공무집행을 대통령이 끼어들어 비난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오바마 시대에도 여전히 이런 논란이 벌어져야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소리와 더불어 "오바마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문제가 이렇게 조명받지도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함께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