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담배가 사람을 피운다면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커뮤니케이션 송석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커뮤니케이션 송석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느 날 시내에서 우연히 대학 후배를 만났습니다. 근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후배는 머리숱도 듬성듬성하고 안색이 몹시 안 좋아 보였습니다. 인근의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가 마주앉자마자 그는 담배부터 피워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지 않는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선배님은 이제 담배 안 피우세요?” 그의 질문에 나는 10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치뜨고 다시 물었습니다. “예전에 선배님은 하루에 담배를 3갑도 넘게 피웠는데 어떻게 그걸 끊었죠?”

10년 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피로를 느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도 10분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모양이라 여기고 며칠 동안 늘어지게 잠을 잤지만 피로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병원을 찾아가자 만성피로 증후군인 것 같다며 담배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며칠 동안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있는 동안 피로의 사슬에 완전히 포박된 나 자신이 미물처럼 여겨져 이를 데 없이 비감스러웠습니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담배를 피웠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글을 쓴 것이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담뱃갑을 분노의 힘으로 짓이겨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껏 10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노라고 얘기하자 후배는 골똘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뜻밖의 질문을 건넸습니다. “담배를 끊으면 인생관이 바뀝니까?” 거창한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아주 담담한 어조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인생관만 바뀌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담배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덧붙였습니다.

인간의 삶은 많은 부분이 중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습관으로 치부하는 일 중에는 자신의 삶을 병들게 만들고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은 좋은 결실을 불러 오지만 나쁜 습관은 타락과 파국을 몰고 옵니다. 마약 음주 도박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그것 말고도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나쁜 습관은 많습니다. 그것을 체크하고 그것을 예방하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자신밖에 없습니다. 의지를 갖고 나쁜 습관을 끊을 수 있다면 그 영역은 창조성을 지닌 공간으로 되살아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중독을 중독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일,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중독입니다.

나의 얘기를 듣고 난 뒤에도 후배는 여전히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건넸습니다. “담배가 자네 인생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후배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닌데 왜 역전시키지 못하는가? 지금 자네의 건강 상태로 보면 자네가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담배가 자네를 피우는 형국일세.” 담배가 사람을 피우는 상상을 하며 금연하라는 권유를 하고 나서 나는 후배와 헤어졌습니다. 담배를 끊으면 다시 연락하겠다던 그에게서 언제나 전화가 걸려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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