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나가는 휴대전화 배짱 AS, 속내 알고보니

  • 입력 2009년 7월 24일 16시 29분


회사원 송모 씨(27)는 이달 초 P사가 제조한 S제품 휴대전화 전원이 갑자기 꺼진 뒤 배터리를 충전해도 전화가 켜지지 않자 서울 용산에 위치한 이 업체의 애프터서비스(AS) 센터를 찾았다.

센터 측은 "기기 내부 부품에 이상이 생겼다"며 수리비로 9만8000원을 요구했다. 송 씨는 제품을 구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기기에 충격을 가하거나 떨어뜨린 적도 없지만 업무 상 휴대전화를 계속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를 맡겼다.

송 씨의 휴대전화는 그러나 수리 받은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다시 전원이 꺼지며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기기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 송 씨는 이번엔 AS센터를 찾기 전에 이 업체의 콜센터로 연락해 문의했다.

업체 상담원은 "구매한 지 1년이 안 돼 보증기간이 지나지 않은 제품은 고객이 실수로 물에 빠뜨리거나 파손시키지 않는 한 무상수리가 가능하니 가까운 AS센터를 찾으라"고 설명했다. 송 씨는 당초 AS센터 측이 무상수리에 대한 설명부터 해주지 않은 점에 분통이 터졌지만 다시 수리를 맡겨야 하니 센터를 찾았다.

센터 측은 그러나 이번에도 "충격을 가해 고장이 난 것"이라며 수리비 9만8000원을 청구했다. 송 씨는 "기기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고 충격을 가한 흔적도 없는데 열흘도 지나지 않아 또 고장이 난 것은 휴대전화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무상수리를 요구했다.

센터 측은 이에 대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이용자 과실이 틀림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또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면 기기가 다른 물건에 눌려 내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며 "돈을 내야 수리할 수 있고 지금 수리를 맡기더라도 당장 부품이 없어서 당분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송 씨는 결국 이 기기가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고장을 일으킬지 불안해 아예 다른 업체의 새 제품을 구입했다. 센터 직원의 설명대로라면 화장품 등 가방 속에 든 가벼운 물체에 눌린 미세한 충격만으로도 해당 제품이 고장이 날 정도로 내구성이 없고 그때마다 수리비용을 내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휴대전화 기기 제조업체의 무성의한 AS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액정화면이나 휴대폰 표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기기 내부 결함이 의심되는데도 추측만으로 "이용자 실수로 파손시킨 것"이라며 무상수리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수리비나 보상기준에 대한 일관성이 없어 같은 업체라도 AS센터마다 고장 원인에 대한 설명이나 청구비용이 차이를 보이는 등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소비자원에는 이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6월 접수된 휴대전화 관련 민원 총 4197건 중 36.5%가 AS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 서비스2팀 박경희 팀장은 "최근 들어 특정업체에 대한 민원이 유독 많아서 이 업체에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이 업체의 경우 기존 AS센터와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으로 AS를 겸한 이동통신 종합엔터테인먼트 매장을 신설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해명했다"고 밝혔다.

업체 측이 각 AS센터를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지원을 축소하는 것에 반발해 기존 AS센터가 고의적으로 소비자 불만에 무성의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증기간 중 무상수리가 가능한 기기 결함에 대해서도 무조건 '이용자 과실'로 몰아세우며 수리비를 받아 챙기는 AS센터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팀장은 "이 업체의 경우 일부 AS센터가 이용자에게 '불만이 있으면 소비자원에 고발하라'고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는 복잡한 처리 과정을 통해 소비자를 최대한 귀찮게 만들고 처리 시간을 지연시키는 한편, 업체의 이미지에도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업체 측도 AS센터의 이 같은 횡포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거나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업체에 불만을 전해도 "기기 결함 원인은 각 AS센터에서 판단할 문제"라고만 밝히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 결국 브랜드를 믿고 기기를 구입한 소비자만 중간에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고발 건을 살펴보면 AS센터가 보증기간 중 무상수리를 받아야 하는 결함에 대해서도 유상수리를 요구하는 등 소비자 피해가 잘 드러난다.

A씨는 "휴대전화 전원이 꺼지고 송수신 상태가 불량해 총 2회에 걸쳐 수리를 받았으나 다시 고장이 났다. 기기 교체를 위해 세 번째로 AS를 의뢰하니 갑자기 사용자 과실에 따른 파손이라며 수리비를 납부하라고 했다"고 접수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는 "화면이 어두워지는 결함으로 총 4회에 걸쳐 수리를 받았으나 다시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AS센터에선 충격으로 부품에 금이 갔다며 수리비 14만원을 요구해 거절하고 돌아왔다. 업체 팀장에게 직접 항의하니 무상수리를 해줬지만 또 결함이 발생했고 이번엔 수리비로 9만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AS센터 직원으로부터 내가 사용하는 기종이 비슷한 결함이 많아 무상으로 수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기기는 사용자 과실이니 돈을 내야 한다며 무성의하게 설명했다"며 "담당자마다 견적이 차이가 나는 등 일관성, 신뢰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C씨의 경우 "통화 중 기기에서 열이 심하게 나 AS센터를 3차례나 방문, 조치를 요구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며 "발열에 대해 센터 측이 인정하고 수리를 했는데도 기기에 이상이 심해 환불을 요구하자 갑자기 말을 바꿔 그동안 AS를 받은 기록상 이상이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 B, C씨는 모두 휴대전화 이상으로 AS센터에 무상수리, 기기 교체 등을 요구했으나 '이용자 과실'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뒤 소비자원에 정식으로 고발해 해결된 사례다. 이 같은 사례만 봐도 AS센터가 명확한 증거 없이 기기 결함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다 결국 원래의 주장과 다르게 조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휴대전화 제조업체 P사는 "AS센터에선 휴대전화 관련 불만사항에 대해 소비자원 규정에 맞춰 처리하고 있다"며 "기기 결함 원인은 전적으로 AS센터가 살펴본 뒤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소비자의 주장은 100%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원에선 전화, 인터넷 등을 통해 불만이 접수되면 이용자의 휴대전화를 수령해 자체적으로 검사한다. 결함 원인이 업체 측의 주장과 상반될 경우 해당업체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고발 건수가 많은 데다 입증도 쉽지 않아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사실상 업체에 유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박 팀장은 "기기 결함으로 여러 번에 걸쳐 휴대전화 AS를 받을 경우 AS센터에서 담당자 이름과 내용 등 관련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기록이 위조돼 낭패를 보기도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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