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업체 ‘로열티 횡포’에 강력 제동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 공정위, 퀄컴에 2600억원 과징금
로열티 차등-리베이트로 경쟁 방해
퀄컴 측 “0 하나 더 붙은 줄 알았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원천기술 사용 대가로 휴대전화 대당 출고가의 5∼5.75%를 로열티로 예외 없이 퀄컴에 지불했다. 퀄컴은 자사가 생산한 모뎀칩 등 부품을 구입하는 업체에 원천기술 로열티를 낮춰주거나 리베이트를 제공하며 국내 휴대전화 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공정위는 23일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퀄컴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경쟁사 모뎀칩 쓰면 로열티 높여

공정위는 퀄컴이 경쟁사 부품을 사용하는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원천기술 로열티를 더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퀄컴은 국내에 시판되는 휴대전화의 경우 판매 가격에서 퀄컴 부품 가격을 뺀 뒤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았다. 퀄컴 부품을 쓰지 않는 휴대전화 제품에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로열티가 붙었다. 2003년 10월부터는 대당 지불하는 로열티 상한액이 퀄컴 모뎀칩을 사용할 때는 20달러였지만 경쟁사의 모뎀칩을 쓰면 30달러로 올라갔다.

퀄컴은 2000년 7월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모뎀침, RF칩의 대부분을 자사에서 구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퀄컴은 로열티와 부품 판매로 2007년에만 한국에서 38억7000만 달러(약 4조837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퀄컴 세계 전체 매출의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해 12조 원 매출 올려

공정위는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올린 매출액이 2000년부터 약 1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동원 공정위 부위원장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해서는 관련 매출액의 2∼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6년 공정위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긴 325억 원과 지난해 인텔에 부과한 260억 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퀄컴 관계자는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많아 ‘0’이 하나 더 붙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퀄컴의 독점적 지위 남용에 대해 세계에서 첫 번째로 내려진 결정이다. 이에 따라 비슷한 혐의로 불공정 거래 조사에 들어간 유럽연합(EU) 경쟁당국뿐만 아니라 현재 불공정 거래 혐의 조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휴대전화 가격 내려갈까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휴대전화 부품 시장의 경쟁을 촉발하고 궁극적으로는 휴대전화의 가격을 내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업계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다른 회사에서 만든 모뎀칩은 품질이 낮고 버그가 많아 저가폰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퀄컴의 원천기술을 의식한 듯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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