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아가씨, 꿈 깨세요”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이 남자, 돈도 능력도 있다. 배울 점도 얻을 것도 많다. 그리고 나이는 나보다 두 배나 많다.

출판계의 거물 아치 녹스(알렉 볼드윈). 편집자를 꿈꾸는 내겐 전설 같은 존재다. 소문난 바람둥이지만 뭐 어때, 그만큼 매력 있다는 증거인데. “남자 친구가 있어요”라는 말에 “난 금붕어 있어”라고 말할 줄 아는 재치까지…. 고모와 오래전 사귀었다는 사실이 좀 찜찜하지만 눈감아줄 수 있다. 전처 두 명과 속 썩이는 딸까지도. 그런데 뭐라고? 당뇨병을 앓는 것도 모자라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고?

마크 클레인이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 ‘내 남자는 바람둥이’(23일 개봉)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에 비해 체온이 5도쯤 낮은 냉정한 영화다.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해 젊은 여자가 가질 법한 환상을 산산조각 낸다. ‘세렌디피티’의 각본을 썼던 감독은 탄탄한 구성과 재기 넘치는 대사,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을 비껴간다.

지방에서 갓 올라온 브렛 아이젠버그(세라 미셸 겔러)는 뉴욕의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한다. 자아를 찾으러 유럽여행을 떠난 철없는 남자친구를 뒀지만 나의 모든 걸 지지해주는 아빠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렛은 책 사인회에서 만난 아치와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완벽한 남자를 만난 것도 잠시, 새로 부임한 까칠한 여자 편집장이 아치의 옛 연인이라는 게 밝혀지며 혼란에 빠진다.

브렛에게 아치는 “내 삶의 답안지에 정답을 적어주는 남자”였다. 일에 치일 때면 ‘짠’ 하고 나타나 내게 필요한 답을 쓱 내밀고 갔다. 하지만 그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들이 너무 많았다. 과거의 여자들부터 습관, 추억까지…. 결국 아치의 인생에서 마지막 여자이길 바랐던 브렛은 이를 위해 감내해야 할 현실적인 책임들을 떠올린다. 아치를 떠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과거 알렉 볼드윈의 날렵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푸짐한 그의 얼굴을 보고 실망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조차 냉정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면 보지 말 것. 하지만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사랑을 잠깐 포기했던, ‘역할모델’과 남편감을 잠시 착각했던 사람들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일 영화다. 멜리사 뱅크의 베스트셀러 ‘젊은 여성을 위한 남자 낚시 가이드’를 원작으로 했다. 원제는 ‘변두리 여자(Suburban girl)’. 15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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