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한국 ‘경제 국수주의’ 비상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각국 정부 경기부양 나서며 자국업체 유리하게 영향력 행사
LCD TV 중국시장 점유율 한국업체 10%P↓ 中업체 23%P↑

최근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중전기기업체 A사는 수주를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거래 기업을 아무리 두드려 봐도 묵묵부답이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현지 기업과 정부기관들은 러시아 전력청에서 ‘전력기기 구매 시 러시아 업체의 제품을 사용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아놓고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입찰에 참여하지만 외국 업체의 수주 가능성이 낮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글로벌 경기침체를 맞아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자국(自國) 업체들에 혜택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국 산업 보호주의의 영향으로 일부 시장에선 자국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 4국)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 한국 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

○ 자국 업체에 유리한 경기부양책

LG전자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인 가전하향(家電下鄕·농촌 거주자가 가전제품 구입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중국 업체에 비해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정책 참여 기준이 중국 업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시행된 이후인 올 1분기(1∼3월)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TCL 등 중국 업체의 중국 내 액정표시장치(LCD) TV 시장점유율은 64.1%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2%포인트나 증가했다. 반면 한국 업체(삼성전자, LG전자)와 일본 업체(소니, 샤프)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각각 9.9%포인트, 4.0%포인트 떨어졌다. 작년 상반기(1∼6월) 중국 시장에서 매출액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1분기 9위로 추락했다.

중국의 자국 업체 시장점유율 증가와 함께 AUO, CMO 등 대만 LCD 패널 제조업체들의 점유율 동반상승도 이어지며 중화경제권의 부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300억 달러(약 37조5000억 원) 규모의 해양플랜트를 발주할 것으로 알려진 브라질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입찰 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회사가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입찰에 ‘자국 내 건조’라는 조건을 달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현지 업체와 함께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현지 건조의 불이익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이런 원칙은 수년 전부터 ‘자국 화물은 자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자국 선박은 자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의미의 ‘국수국조(國輸國造)’ 정책을 추진해 온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자국 업체 건조 비율은 2007년 18.3%에서 2008년 22.1%로 늘어났다. 일본의 자국 업체 건조 비율도 2007년에는 전년 대비 1.2%포인트 줄어들었지만 작년 말에는 다시 2.5%포인트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인도 베트남 카타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 5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도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의 미국 내 판매량이 일제히 상승한 데 반해 현대·기아자동차의 점유율은 소폭 하락한 바 있다.

○ 자국 산업 보호, 앞으로도 늘어날 것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발표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조치 모니터링 3차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 신설이 폐지보다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제지원, 간접적 형태의 보조금 등 경기부양을 위한 자국기업 지원이 계속 늘어난다는 의미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갖춘 한국은 이런 추세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 상반기 한국 기업들의 수출은 작년 대비 22.3% 줄었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직까지는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선전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면에서 큰 피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미국 등의 경기부양 재정지출이 본격화되는 올 하반기(7∼12월)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