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터널… 빛으로 나온 자, 아직 갇힌 자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 주가로 본 글로벌증시 ‘승자의 효과’
삼성-LG전자 등 부진 털고 훨훨… 세계 라이벌 압도
국내 50대 기업 55%는 여전히 리먼사태 그늘 못벗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해외 경쟁업체에 비해 빠른 주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깊은 불황의 골을 헤치고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넓힌 ‘승자의 효과’가 증시에서 기업가치의 상승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업종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구조조정이 늦춰져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국내 주요 기업 상당수는 여전히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직전의 주가도 회복하지 못해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속속 기대치를 넘어서면서 코스피는 22일 1,494.04로 ‘리먼 쇼크’ 직전인 지난해 9월 12일의 주가(1,477.92)를 훌쩍 넘어섰다.

○ 인텔, 노키아, 도요타보다 주가 회복 빨라

22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2008년 1월 2일 주가를 100으로 해 현재 주가를 지수화했을 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의 현재 주가는 모두 100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합하는 인텔, 노키아, 모토로라, 포드, 도요타자동차 등의 주가는 여전히 100 아래에서 맴돌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지난해 10월 중순 73.3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해 20일에는 124.1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LG전자도 한때 70대까지 떨어졌지만 역시 3월 반등에 나서 133.0을, 현대자동차는 112.8을 나타냈다. 특히 지난 1주일간은 삼성전자 11.3%, LG전자 9.5%, 현대차 8.0%의 상승탄력을 과시했다.

반면 반도체와 휴대전화 부문의 글로벌 강자인 인텔과 노키아의 주가는 각각 89.3과 35.3에 머물고 있다. 자동차 부문의 글로벌 메이저인 포드와 도요타도 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포드는 업계 라이벌인 제너럴모터스(GM)가 몰락한 데 따른 반사이익으로 주가가 올랐지만 여전히 91.2에 멈춰 있다. 도요타도 실적 부진으로 3개월간 50∼60 선을 오르내릴 뿐이다.

삼성증권 정명지 수석연구원은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원화 약세 속에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며 적절한 신제품을 선보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다”며 “특히 중국의 경기부양 정책이 소비를 촉진시키며 그 효과가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 경쟁력 따라 산업-기업별 회복 속도 뚜렷한 차이

국내 글로벌 기업들과는 달리 상당수 국내 주요 기업의 주가 회복 상황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시가총액 상위 50위 이내의 국내 기업 중 리먼 사태 뒤 상장한 KB금융지주를 뺀 49개 기업의 지난해 9월 12일 종가와 21일 종가를 비교했다. 그 결과 27개(55.1%) 기업의 주가가 리먼 사태 직전의 주가보다 낮았다. 리먼 사태 직전 주가보다 20% 이상 하락한 기업도 10개나 됐다.

현대건설(―14.7%) 현대중공업(―18.8%) 신한금융지주(―21.2%) 두산중공업(―23.6%) 등 해당 업계에서 간판급 위상을 지닌 기업들도 리먼 사태 이전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현대증권 박문광 투자분석부장은 “정부의 재정 정책으로 경기가 좋아진 건 맞지만 산업, 기업별 회복 속도에선 차이가 아직 크다”며 “전체적인 경기와 기업들의 투자여건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 위기탈출 수혜는 소수에 집중

주가가 오른 기업 수는 적지만 변동폭은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컸다. 리먼 사태 직전의 주가에서 20% 이상 상승한 기업은 10개였고, 이 중 삼성테크윈(154.0%) 삼성전기(83.1%) LG화학(53.2%) 등 3곳은 50% 이상 상승했다.

업종별로도 주가 차별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업종 관련 기업들의 상승세는 뚜렷했지만 금융, 중공업, 건설 업종 관련 기업들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IT기업 중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LG전자 삼성전기 등은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통신서비스업체인 KT(―11.7%)와 SK텔레콤(―13.3%)은 하락해 같은 업종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금융업종에서도 대우증권(28%) 삼성카드(16.2%) 삼성증권(5.5%) 등은 주가가 올랐지만 은행들은 모두 리먼 사태 직전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박 부장은 “건설과 중공업 분야는 기업들과 해외 산유국들의 설비투자와 관련이 깊다”며 “같은 업종 안에서 기업별로 주가 움직임이 엇갈리는 것은 위기 탈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인가 등의 전망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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