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의 유물’ 지상파 독과점 구조 29년 만에 허물어져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지상파 3사 시장점유율 2007년 기준 81% 달해

‘1공영 多민영’ 전망… MBC, 민영-공영 선택 기로

■ 미디어법 통과 의미와 전망

22일 미디어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980년 신군부가 언론 장악을 위해 시도한 언론 통폐합 이후 공고해져 온 KBS MBC SBS 등 지상파의 독과점 체제가 29년 만에 깨지게 됐다. 신문과 기업 등 경쟁력을 갖춘 신규 사업자들이 케이블 등을 통해 방송시장에 진출하면서 지상파들은 칸막이 효과로 인한 독과점적 지위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지상파 3사의 시장점유율 81.1%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2월 ‘방송 소유 규제완화와 여론 독과점’이라는 연구자료를 통해 방송 3사의 2007년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을 44개 지상파 사업자 중 81.1%로 분석하기도 했다. ‘1개사 50% 이상, 상위 3개사의 합계 75% 이상’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기준에 저촉되는 셈이다.

지상파 3사는 방송 보도 분야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TV를 켜놓은 가구 가운데 특정 채널을 보는 가구 비율을 따지는 시청점유율을 보면 지상파 3사는 70∼80%에 이른다(TNS미디어코리아 조사). TV를 켠 4가구 가운데 3가구가량이 지상파를 보는 것이다. 방송 3사 메인 뉴스의 총합시청률도 30%를 웃돈다.

언론재단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08 언론수용자 인식 조사에서도 지상파 3사의 영향력은 신문, 방송, 인터넷을 포함한 전체 여론시장에서 57%를 차지했다. 인터넷 포털이 21.4%였고, 동아 조선 등 메이저 신문사의 합은 8.2%였다. 아울러 사회적 현안에 대해 KBS는 ‘미디어비평’ ‘시사 360’, MBC는 ‘PD수첩’ ‘뉴스 후’ ‘시사매거진 2580’, SBS는 ‘뉴스 추적’ 등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야토론(KBS) 100분토론(MBC) 시사토론(SBS) 등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여론 형성에 한몫하기도 한다.

○ 글로벌 경쟁력 강화해야

방송통신위원회가 11월경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을 1, 2개씩 새로 허가할 예정이다. 종합편성과 보도채널은 각 가정에 방송을 송출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방송을 내보내야 한다. 전국 1670여만 가구 가운데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통해 TV를 보는 가구가 1500여만 가구(89.8%)인 것을 감안하면 종편과 보도채널이 지상파와 경쟁을 할 수 있게 된다.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자본 유입, 매체 간 겸영 등이 원활해지면서 결국 경쟁력 있는 매체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이나 기획사들도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통 경로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반기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 제작사들은 프로그램 공급을 지상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방송에 드라마를 내보내는 대신 저작권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해 왔다. ○ KBS는 명실상부한 공영방송 돼야

KBS는 방송가에서 오래전부터 촉구해온 ‘1공영 다민영’ 체제에 따라 지상파 독과점에 머물지 않고 명실상부한 공영 채널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4일 “KBS와 관련해 가칭 방송공사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공사법은 공영방송인 KBS와 EBS 등을 합쳐 국가 기간방송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민영방송사들은 콘텐츠와 산업적 경쟁력 강화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현재 KBS의 수입 가운데 60% 정도인 광고 수입 비중을 20%로 줄이고, 나머지 80%는 수신료로 채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광고 의존 비율이 줄어들면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결국 공공성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가 주식의 70%, 정수장학회가 30%를 갖고 있어 소유 구조상 공영 형태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광고로 충당해 민영방송사 형태로 운영돼 왔다. MBC는 당장 큰 변화를 맞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내부 의견을 수렴해 공영과 민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관열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MBC는 공영인 소유구조와 달리 수십 년간 상업 방송을 해왔다”면서 “결국 민영화의 길로 갈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그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다른 한 교수는 MBC 노조의 연이은 파업에 빗대 “그렇게 시끄러운 종업원이 많은 기업에 투자하려는 대기업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민영 방송으로 시작해 일찍부터 상업 방송의 길을 걸어왔던 SBS는 재편이 예상되는 방송 광고시장에서 주도권 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구독률과 시청점유율

구독률=전체 가구 수에서 특정 신문을 구독하는 비율인 가구 점유율을 말한다. 구독률은 돈을 내고 정기 구독하는 사람 수를 의미하며, 열독률이란 구독은 하지 않아도 신문을 읽은 사람의 수를 뜻한다.

시청점유율=TV를 시청하는 가구 중 특정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가구의 비율. 한 방송사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쓰인다. TV를 보든 보지 않든 TV 수상기를 보유한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청률과는 다른 개념이다. 현 방송 시장에서 KBS 등 지상파 3사의 시청점유율은 80%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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