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 “저지” 전쟁터 국회 재연…개의 37분만에 “통과 통과”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한나라 의총서 “협상종료”

오전 9시15분 의장석 확보

보좌진 등 뒤엉켜 부상 속출

질서유지권 발동해 법안 처리

미디어관계법이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직권 상정 후 37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여야의 거친 몸싸움과 고성으로 얼룩졌다.

○ 한나라당 협상 종료 선언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9시 10분경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며 협상 종료를 선언했다. 의원총회가 열린 지 1분 만이었다. 이후 한나라당 의원 100여 명은 본회의장으로 속속 입장해 의장석을 에워쌌다. 신성범 원내 대변인은 “의장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의원 10명 안팎이 본회의장에 있었지만 수적 열세로 고함만 지르다 밀려났다.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던 민주당은 당황했다. 이강래 원내대표 등은 회의를 중단하고 본회의장을 둘러본 뒤 김형오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자리에 없었다.

○ 민주당의 본회의장 출입구 봉쇄

이 원내대표는 대책회의에서 정세균 대표와 함께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박주선 최고위원 등은 “민주당 의원 84명의 시신을 밟고 들어가지 않으면 직권상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격앙된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당 보좌관들은 국회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당 대표실 쪽 창문을 뜯고 국회 본청에 진입했다. 민주당 의원 30여 명과 보좌진 70여 명은 본회의장 출입구 6곳을 막고 농성을 시작했다. 한나라당 보좌진도 출입이 통제된 본청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 직권상정 선언

오전 10시 45분. 김형오 국회의장은 김양수 비서실장을 통해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선언했다. 하지만 본회의장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은 의결 정족수를 밑도는 120여 명에 불과했다. 국회법상 본회의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재적 의원(294명)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본회의장 밖으로 “상임위별로 체크해!” 등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이 본회의장 앞 출입구에 탁자, 의자 등으로 장애물을 만들고 출입을 봉쇄하는 바람에 본회의장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포위를 당한 모양새가 됐다.

○ 몸싸움 시작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김 의장의 직권상정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낭독하자마자 한나라당 의원과 보좌관 몇몇이 본회의장 출입구 쪽으로 몰리면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양측은 본격적으로 엉켜 붙었다. “한나라당이 잘하는 게 뭐야” “그럼 민주당이 잘하는 게 뭔데” 등의 고함이 오갔다. 장애인인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은 민주당 의원과 보좌관을 향해 전동 휠체어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쓰러져 이송됐고,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손등뼈가 부러졌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팔이 골절됐다. 김 의장은 본회의장 앞까지 왔다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막혀 돌아갔다.

○ 이윤성 부의장 본회의장 진입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보좌관들의 집중 공략으로 본회의장 오른편 보조출입구 문이 뜯겨 나갔다. 이윤성 부의장과 의원 30여 명이 순식간에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성원이 되자 오후 3시 34분 이 부의장은 의사봉을 잡고 개회를 선언했다.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날치기 중단’ ‘한나라당 해체’ 등의 고함을 지르며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부의장은 오후 3시 38분 3건의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4건을 일괄 상정했다. 이 부의장은 “장내가 소란해 심사보고, 경과보고는 회의 자료로 대체하고 질의와 토론도 실시하지 않겠다”며 표결을 선언했다.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 등 자유선진당 의원 15명은 김 의장의 직권상정 방침 발표 이후 표결 참여를 위해 본회의장으로 향했으나 입구를 봉쇄한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막혀 발길을 돌려야 했다.

○ 방송법 재투표

미디어법 중 두 번째로 이뤄진 방송법 표결 때 재적 과반수 요건을 지키지 못한 상황인데도 이 부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하자 야당 의원들은 “부결됐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 부의장은 국회 의사국으로부터 쪽지를 넘겨받은 뒤 “표결이 성립되지 않아 재투표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무효라고 외쳤지만 이 부의장은 재투표 후 “통과됐음을 선포합니다”라며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이어 4월에 부결된 금융지주회사법까지 통과시킨 뒤 산회를 선포한 시간은 오후 4시 16분이었다. 산회 직후 로텐더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대표는 “패한 것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장외투쟁의 전의를 다졌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박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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