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민관, 인사교류로 소통해보자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1986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기로에 서 있었다. 64K, 256K D램의 가격폭락으로 큰 적자를 보는데도 반도체 업체는 생존을 위해 1M D램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급박한 시기였다. 업체들은 투자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지는 상황. 이를 잠재우고 대출기관이 대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간 요인은 관료들의 설득이었다. 반도체 업체는 이후 1M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시론/이홍규]민관, 인사교류로 소통해보자

민(民)과 관(官)의 협력은 한강의 경제기적을 이룬 원동력이다. 시장경제의 시대가 됐다 해서 민관의 협력이 끝나지는 않았다. 21세기는 새로운 협치(協治)의 시대이다. 민과 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업 경영기법을 정부가 차용하는 상황이라도, 세계화 시대의 메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민과 관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선진국 경쟁력도 민관이 뭉쳐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생산이 아닌 기술과 지식, 제도 운영에서 2.0시대의 참여와 공유가 일어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민과 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르기에 협력이 쉽지 않다. 둘은 요구되는 지식, 사고, 자세에서 다르다. 민이 특정 부분의 전문지식을 요구한다면 관은 전일적(全一的) 지식을 요구한다. 민이 부분적인 현장 경험에 뛰어나다면 관은 종합적인 관리역량에 강하다. 민의 사고가 창의와 혁신에 중점을 둔다면 관은 관리와 통제에 중점을 둔다. 민에서는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라’고 하지만 관에서는 ‘문제없게 하라’고 한다. 민은 실리를 추구하지만 관은 자긍심을 먹고 산다. 그래서 민은 이익에 민감한 ‘을(乙)’이 될 수 있고, 관은 위계에 민감한 ‘갑(甲)’이기를 고집한다.

민과 관이 이렇게 다르니 양자의 골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협치를 위해선 민과 관의 상호 이해와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어떻게 그것을 만들 것인가? 첫째, 민과 관에 정보 소통을 위한 유인체계가 있어야 한다. 민은 관이 알지도 못하고 정책을 만든다고 투덜대고, 관은 민이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한다고 눈을 흘긴다. 말은 많으나 실제 행동이 없는 것은 마음이 통하지 못해서다. 민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우선 관이 갑(甲) 의식을 버려야 한다. 관의 의식을 바꾸는 지속적, 체계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도 마음을 열 수 있다.

둘째, 민과 관이 협력의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꼭 필요한 제도가 꼭 지켜지게 하는 일이다. 관이 편한 규제를 만들어 놓고 안 지켜도 눈 감는 현실이다. 일종의 제도의 실패(institution failure)이다. 관은 실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민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니 기본적으로 관에 대한 신뢰가 있을 수 없다.

‘和而不同’해야 시너지 나온다

셋째, 민과 관 사이에 사람의 교류가 일어나야 한다. 리더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민과 관을 넘나들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갑을(甲乙)의 문화도 바뀔 수 있다. 사실 관에는 민에서, 민에는 관에서 일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이희범 STX그룹 에너지부문총괄 회장도 차관에서 물러날 때 기업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일부에선 관료의 기업행을 두고 민관유착의 부패를 걱정하나 이는 뭐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이치와 같다. 다만, 가능한 한 중간 이하 자리에서 하는 것이 더 좋다. 다른 조직문화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민관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해야 한다. 조화는 이루되 똑같지 않아야 한다. 같아지면 자신의 장점을 잃는다. 서로 다른 것을 장점으로 알고 힘을 합칠 수 있을 때 시너지가 나온다. 국가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은 민과 관의 소통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홍규 KAIST IT경영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