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주어진 시간은 단 5분… ‘전설’이 춤춘다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나이 먹어 이게 뭔짓이다냐.” 21일 서울 종묘 담벼락에 핀 원추리꽃을 배경으로 민살풀이춤의 명인 조갑녀 씨가 자세를 취했다. 춤사위를 보여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묵묵부답이더니 웃어달라는 주문에는 소녀 같은 웃음을 지었다. 전영한 기자
“나이 먹어 이게 뭔짓이다냐.” 21일 서울 종묘 담벼락에 핀 원추리꽃을 배경으로 민살풀이춤의 명인 조갑녀 씨가 자세를 취했다. 춤사위를 보여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묵묵부답이더니 웃어달라는 주문에는 소녀 같은 웃음을 지었다. 전영한 기자
《조갑녀(86). 할아버지 환갑 때 태어났다 해서 갑녀(甲女)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춤출 때만큼은 그는 조영숙이거나 조갑례였다.

여염집 여자로 평생을 살았기에 본명을 알려 집안에 누를 끼치기 싫었다.

그런 그가 여든여섯의 나이에 진짜 이름 석 자를 내걸고 무대를 펼친다.

26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당 예악당에서 열리는 ‘노름마치뎐-춤! 조갑녀’가 그 무대다. 》

민살풀이춤 명인 조갑녀 씨, 26일 국립국악당 무대 올라

여섯살때 춤 배운후 명성 떨쳐
출가후 재능 숨기고 가슴앓이
부족한 듯 서운한 듯 추는게 춤
꽁꽁 묶은 60년세월 풀어낼 것

여기서 조 씨는 시나위 장단에 몸을 실어 ‘민살풀이춤’을 선보인다. 그의 말처럼 민살풀이춤은 “수건 덕 보려는” 살풀이춤과 다르다. 손엔 실오라기 하나 쥐고 있지 않다. 제 한 몸에 의지해 멋과 한으로만 출 수 있다는, 간결하지만 가장 어렵다는 그 춤이다.

21일 오후 서울 종묘 옆 한복집에서 조 씨를 만났다. 깔깔한 반투명 흰색 한복을 이 집에서만 지어 입는다고 했다. 춤사위가 제대로 살아나려면 한복 소매가 붕어 배처럼 볼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을 앙다문 채 꼿꼿하게 앉아 있는 그에게 2년 만에 춤사위를 펼치는 소감을 물었다.

“멍멍하니 뭐라 말할 것도 없지. 이 나이가 되면 극도로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법이여.”

전남 남원 출신인 그가 조선 말의 명무(名舞) 이장선에게 춤을 배운 건 여섯 살 때였다. 1932년부터 10년간 춘향제에서 살풀이춤, 승무, 화무, 검무 등을 추며 ‘조영숙’이라는 가명을 남원 바닥에 떨쳤다. 남원 권번(기생을 관리하던 곳)에서 북 장구 징을 가르쳤던 부친 조기환과 ‘스타 예기(藝妓)’였던 고모 조기화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부친이 작고하던 1941년 전북 부잣집의 맏며느리가 된다. 열여덟 살이던 그는 동시에 춤을 거뒀다.

“평범한 여자라 속이고 시집간 걸 어떡혀. 그때부터 머리와 가슴으로 춤을 췄지. 그걸 숨기고 가정일 하며 살라니 머리가 아프더라고. ‘뇌신’(당시 두통약)을 입에 달고 살았당께.”

이때부터 숨바꼭질 같은 춤 인생이 시작된다. 1971년과 1976년 남원 국악계 인사들의 부탁으로 춘향제에 잠시 선 것 외에 그는 춤을 꽁꽁 숨겨 왔다.

그러던 2004년 6월. 광한루 앞에서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슬하에 12남매를 뒀지만 한 번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던 춤을 다시 풀어보고 싶었다. “나를 덮을 수(이길 수) 없다면 배울 생각도 하지 마라”며 매정하게 굴던 어머니 조 씨는 그때부터 열한째, 열둘째 딸 둘에게 승무와 살풀이춤을 전수 중이다. 딸 정명희 씨는 “무대 뒤를 돌아와서 아쉬워하는 게 낫지 무대 위에서는 절대 잘난 체하지 마라. 늘 부족한 듯, 서운한 듯 추라는 게 어머니의 교육방침이었다”고 말했다. 무뚝뚝한 조 씨는 요즘에야 딸에게 “뱃속에 판소리 다섯 바탕은 품어야 춤이 나온다”는 말도 자주 한다고 했다.

공연에 앞서 강성민의 ‘승무’, 박경랑의 ‘교방춤’, 권명화의 ‘살풀이춤’, 이현자의 ‘태평무’ 등 후배 춤꾼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 하지만 음악이 ‘엥기면(안기면)’ 얼마를 더 달릴지 모른다고 한다. “무대에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니께. 내가 추고도 어떻게 췄는지 몰라. 그래도 장담은 안하고 잡여. 뭐든 해봐야 아는 거야.” 02-3216-1185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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