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숨 쉬시니 감사할뿐…TV틀어 세상소식 들려줘요”

  • 입력 2009년 7월 22일 21시 56분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서 맏사위 심치성 씨(오른쪽)가 김옥경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심 씨는 “장모님이 이렇게 가족 곁에서 숨을 계속 쉬시고 있는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서 맏사위 심치성 씨(오른쪽)가 김옥경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심 씨는 “장모님이 이렇게 가족 곁에서 숨을 계속 쉬시고 있는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존엄사’ 김옥경 할머니 연명치료 중단 한달째

"엄마, 나 왔어요. 찬송가 좀 틀어드릴까, 아님 성경책 좀 읽어드릴까?"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1508호 김옥경 할머니(77)의 병실. "후우~." 침대에 누운 김 할머니의 숨소리는 때때로 거칠어지다가 또 잦아들었다. 입은 조금 벌어져 있었고 볼에는 붉은 혈색이 돌았다. 뜨고 있는 눈에 먼지가 들어갈까봐 덮은 안대와 코의 호스만 없다면 영락없이 잠깐 잠든 듯한 모습이었다. 할머니의 침대 옆에는 CD카세트플레이어와 찬송가 CD들이 놓여있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김 할머니가 지난달 24일 인공호흡기를 뗀 지 한 달. 당초 호흡기 제거 후 30분~3시간 사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 할머니는 자발호흡을 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몇 차례 무호흡 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김 할머니는 산소포화도와 혈압, 체온 등에서 전체적으로 정상범위의 생체지수를 보이고 있다. 폐렴이나 욕창 등의 합병증도 없다.

한 달 전 눈물의 예배를 드렸던 김 할머니의 가족들도 이제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병실에서 만난 맏사위 심치성 씨(49)는 김 할머니를 향해 "장모님, 나중에 뭐 그런 이야기까지 했냐고 저 혼내지 마세요"라고 허락을 구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째 주는 장모님 상태가 초반엔 워낙 안 좋아서 가족들도 비상연락망을 만들어놓고 24시간 긴장상태로 하루를 보냈어요." 차츰 안정을 찾은 것은 보름을 넘기면서였다. "'아, 이렇게 계속 숨을 쉬시면서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옆에서 말을 아끼던 둘째 딸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김 할머니의 자발호흡은 하루하루 이어졌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조금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가족들 몇몇은 지난 주 몸살을 앓았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다가 한꺼번에 무리가 왔는지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한명 씩 아팠죠."

이제는 가족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루 2~3시간씩 번갈아가며 병실을 찾고 있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갔다가 다들 병실에 모여 작은 예배를 본다고 한다. "좋아하셨던 찬송가도 가족들이 불러드리고 또 애들 방학 이야기도 해드리고 하지요." 김 할머니가 바깥소식을 궁금해 할까 해서 TV도 가끔 틀어드린다. "연예인도 많이 아시고 연말이면 '이미자 쇼'를 보러 가실 정도로 음악도 좋아하셨거든요."

가족들은 '부모님을 빨리 보내려고 호흡기를 떼어버린 자식들'이라는 식의 인터넷 여론에 대한 상처도 내비쳤다. 맏사위 심 씨는 "'존엄사'라는 단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단지 무의미했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치료를 계속하고자 한 것인데 말이죠. 아내와 처제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안 보려고 했는데도 친한 사람들이 '이런 인터넷 댓글이 있더라'하고 알려줘 한번 읽어봤는데 보다가 너무 속이 상해 컴퓨터를 꺼버렸죠.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이해가 갔습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호흡기를 떼고 가족들 곁에 머물러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이었으면 아마 위독하시다는 연락받고 옷 갈아입다 임종도 못 지켰을 거예요." 사위 심씨는 대화 중간 중간에도 김 할머니의 손과 무릎 등을 살폈다. 손가락이나 무릎 같은 곳을 오래 구부리고 계시면 나중에 붓기 때문에 병실을 찾으면 가족들은 이곳저곳을 주물러드린다.

오후 햇볕이 내려앉은 병실. 외부에서는 할머니를 두고 '존엄사'니 '연명치료 중단'이니 큰 논란이 벌어졌건만 할머니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후우~." 조용한 병실엔 할머니의 숨소리가 퍼져나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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