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야구배트 제작’ 장인 체험

  • 입력 2009년 7월 22일 08시 35분


“손잡이는 좀 두껍게. 무게는 850g. 그리고…. 이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대충 깎아주세요.”

방망이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하니, 이종범(39·KIA)의 첫 마디가 그랬다. 별 기대감이 없다는 뜻이었다. 안 쓰면 그만이니까.

오기가 생겼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하루만큼은 장인이 돼 보기로 했다. 대전에 위치한 (주)맥스를 찾았다.

○방망이도 유행 탄다

“제대로 만드셔야 되요. 선수들은 단 1g차이에도 예민하거든요.”

(주)맥스 공금석(47) 사장은 “장인정신 하나로 버텨왔다”고 했다. 공사장은 국내최초로 야구방망이를 프로야구에 공급한 인물.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나무배트의 80%%가 이 회사 제품이다. 연간 생산량은 5만 자루. 프로야구 2군은 거의 (주)맥스의 방망이를 사용하고, 1군 역시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다. “이종범과 최희섭(30·KIA), 이대형(26), 이진영(29·이상LG) 등은 꼭 우리 배트만 찾는다”는 것이 공 사장의 설명. 두산 시절 맥스 배트에 맛을 들인 타이론 우즈(40·주니치)는 지금도 “김치방망이가 그립다”는 연락을 한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나무배트는 깎는 방법에 따라 1000여 가지 모델이 있다. 유명 연예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듯, 배트도 유행을 탄다. “심정수(34) 배트로 해주세요.” 이승엽(33·요미우리)과 심정수가 한 창 홈런 경쟁을 펼치던 시절, 공 사장이 많이 듣던 말. 2008베이징올림픽과 2009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에는 이용규(24·KIA) 스타일이 인기였다.

○나무 중심부는 홈런타자용, 테두리는 똑딱이용

“빨리 장갑부터 끼시고.” 공 사장의 재촉. 하루에만 100개 이상의 배트를 만들기에, (주)맥스는 쉴 틈이 없다. 첫 번째 공정은 제재. 큰 통나무를 자르는 일이다. 프로야구에 납품되는 배트는 거의 단풍나무(메이플)를 쓴다. 원래 한국에서는 물푸레나무를 주로 썼다. 하지만, 공 사장은 배리 본즈가 단풍나무배트로 한 시즌 최다홈런신기록(72개)을 세운 것을 보고 국내최초로 단풍나무를 도입했다. 현재도 단풍나무 원목은 전량 미국에서 수입한다.

“위험해요. 조심하라니까.” 굉음과 함께 제재기계를 돌아간다. 뚝딱뚝딱 원목이 결대로 잘려나갔다. “이건 (최)희섭이 것, 이것은 (이)종범이 것, 이것은 (이)대형이….” 보통 통나무 중심에 가까운 것이 장거리 타자용이다. 반면, 테두리 부분은 단거리 타자가 쓴다. 나무 중심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고, 무겁기 때문. 이종범 배트는 중심과 테두리 사이 부분을 원재료로 쓴다.

○나무 아이스크림

제재 과정을 거친 나무는 영하 30℃의 냉동 창고에서 한 달 간 저온숙성 시킨다. “생선이랑 나무는 똑같다고 보면 돼요. 더운 곳에 두면, 탄력이 떨어지거든.” 이곳에서 숙성시킨 나무를 상온에 두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이스크림이 녹듯, 나무가 머금고 있던 수분이 액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아직 방망이 깎는 곳까지는 가지도 않았는데, 준비과정이 많다. 공 사장은 “몇 만 원 짜리 나무로 20만 원 짜리 배트 만들기가 어디 쉽냐”며 웃었다. 청주기계공고 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한기정(23)씨가 이 공정 담당. 한 씨는 “그 때도 배트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걸 알았다면, 배트관리를 더 잘 했을 것”이라고 했다.

냉동 창고의 문을 열자, 한기가 온 몸에 퍼진다. 7월의 무더위가 싹 가셨다. “저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요?”, “한 달 뒤에 나무랑 같이 나오든지.” 다음 과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망이는 말려야 제 맛

저온 숙성시킨 나무는 고주파 기계에서 120시간가량 건조시킨다. 습도(57mmHG)와 온도(38℃) 조절은 필수. 방망이는 6-8%%의 수분함유량에서 최상의 탄력이 나온다. 보통 장마철에 배트를 상온에 보관하면, 습기를 빨아들여 20g 정도 무게가 늘어난다. 선수들은 금세 배트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다. 공 사장은 “야구 선수들이 덕 아웃 앞에 방망이를 늘어놓는 것도 방망이를 말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여름철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10-20g 정도 가벼운 배트를 쓴다. 무더위에, 습기를 머금은 배트는 더 치명적. 공 사장은 궁리 끝에 30억원의 비용을 들여 고주파 기계를 일본에서 직수입했다. 덕분에 (주)맥스의 배트는 ‘눅눅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칼 밥에 시야는 흐려지고…

드디어 초벌 건목. 초벌 건목에서는 배트의 헤드와 손잡이 부분을 표시하고, 대강의 모양이 나오도록 깎는다. 상대적으로 결이 촘촘한 부분이 헤드. 손잡이 부분의 결이 촘촘하면 배트가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건목기계를 돌리면서 칼을 나무에 들이대자, 팝콘처럼 나무 조각이 튀였다. 기술자들은 이것을 ‘칼 밥’이라고 부른다. 칼 밥 때문에 시야는 흐려지고…. “엇, 너무 많이 깎았잖아. 이종범 (배트) 손잡이는 22.8mm라고!”

초벌 건목 후 배트 무게는 약 2000g. 아직 절반 이상을 더 깎아내야 한다. 2차 건목으로 더 모양을 정교하게 다듬자 무게는 1500g. 3차 건목 후에는 약900g까지 무게가 내려가면서, 점점 방망이의 품새를 갖췄다.

마지막은 사포로 다듬기다. 더 거친 사포로 시작해, 덜 거친 사포로 마무리. 옆에 놓여있는 전자저울에 무게를 재 봤더니 856g. “이종범은 850g이라고 하셨죠? 제가 얼추 맞춘 거 맞지요?” 의기양양. 하지만, 대번에 무안해 졌다. “칠을 해야 되잖아. 칠 하면 20g이 더 늘거든. 더 깎아.”

○정열의 이종범은 붉은 색을 좋아해

칠 작업. 이종범은 붉은 계열의 배트를 선호한다. 김창경(54) 공장장은 “선수마다 좋아하는 색상이 다른데, 전통적으로 해태, KIA선수들은 붉은 계열 색상을 찾는다”고 했다. 칠 작업 후에는 24시간 정도 건조해야 한다.

이종범의 이름을 새기자 드디어 배트 완성. 공 사장은 “솔직히 야구를 볼 때도 내 배트를 쓰는 선수들을 응원하게 된다”고 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쿠바대표팀도 (주)맥스의 배트를 썼다.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쿠바가 홈런을 치는 순간에도 공 사장의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쿠바는 홈런 2방을 쳤고, 결국 금메달은 한국이 땄으니 최상의 시나리오.

품질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는 배트로 판명이 됐다. 기자의 손때가 묻은 배트는 8월4일부터 잠실에서 열리는 KIA와 LG의 3연전 때 이종범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종범은 과연 이 배트로 2005년(0.312) 이후 4년 만에 3할 타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

대전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 ㅣ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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