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 ‘기업형 슈퍼’ 골목상권 진출 일단 스톱

  • 입력 2009년 7월 22일 06시 19분


동네 구멍가게 “불씨는 안꺼졌다”
삼성테스코, 옥련점 오픈 미뤘지만 타지역 개점 준비
소상공인 반발 여전… 정부, 기업형 슈퍼 허가제 검토

20일 인천 연수구 옥련동의 한 상가 앞. 10여 명의 동네 상인들이 몰려와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삼성테스코가 운영하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옥련동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모인 동네 슈퍼마켓 업주 등 상인들. 두 달 가까이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출을 막기 위해 본업을 중단한 채 시위에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홈플러스 측에서 자발적으로 21일 개점할 예정이었던 옥련점의 오픈을 보류하겠다고 밝혀 시위는 일단 멈췄다.

개점 일정이 돌연 보류된 것은 지역상인들의 반대가 당초 예상보다 거셌기 때문이다.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 소속 소상공인과 동네 상인들은 그동안 연일 개점 반대를 외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상품의 상가 진입을 막았다. 지역 상인들의 반발로 개점이 연기된 것은 2004년 익스프레스가 문을 연 뒤 처음이다. 왜 동네 상인들은 익스프레스의 진출을 사활을 걸고 막고 있을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대형할인점인 ‘홈플러스’와 달리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동네에 만들어지는 소형 슈퍼마켓이다. 익스프레스는 경쟁업체인 롯데슈퍼나 GS슈퍼와 달리 330m² 내외의 소형 점포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옥련동 상인들은 “익스프레스가 진출하는 순간 골목길 상권의 주도권이 넘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폐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옥련점도 330m²가 채 안 되는 규모다. 이 때문에 인근 슈퍼마켓 상인을 비롯해 제과점, 생선가게, 야채가게, 과일가게 업주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익스프레스의 진입을 막기 위해 16일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은 중소기업청에 삼성테스코를 상대로 사업조정서를 제출했다. 중기청이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옥련점에 대해 영업 일시 정지를 권고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테스코 측에서 자발적으로 개점을 보류한 것이다. 사업조정 신청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권에 진출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협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사실 조사와 심의를 거쳐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연기하거나 생산품목, 수량 등의 축소를 권고할 수 있는 제도다.

삼성테스코가 개점을 보류함으로써 동네 상인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삼성테스코 측은 27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부평구 갈산점을 오픈할 예정인 데다 서구 검단동에 진출하기 위해 상가 임대차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지역 상인들과 다시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은 부평구 갈산점뿐 아니라 익스프레스가 진출하려는 인천지역 지점에 대해 사업조정 신청을 제출할 것이라고 21일 밝혔다.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은 대기업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소비자를 현혹해 잇속을 챙기면서 동네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현성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은 3kg짜리 설탕을 2.7kg짜리로 만들어 좀 더 싼값으로 판매하는 식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며 “이를 눈여겨보지 않는 소비자들은 동네 슈퍼가 비싸다고 생각해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네 상인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갈등이 계속되자 정부는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 입점을 기존 ‘신고제’에서 ‘등록제’나 ‘허가제’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8∼9월에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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