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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드라마’…졌지만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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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드라마’…졌지만 위대했다

입력 2009-07-21 08:34수정 2009-09-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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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강풍·거친러프 뚫고 브리티시오픈 준우승…갤러리 기립박수

제138회 브리티시오픈이 또 한명의 우승자 스튜어트 싱크(미국)를 탄생시키며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20일(한국시간) 최종 4라운드 경기가 열린 스코틀랜드 에이셔 턴베리 골프장 에일사 코스에는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오직 그가 트로피를 드는 것을 보고 싶었다. 바로 톰 왓슨이었다.

한 달여 만 지나면 60살이 되는 노장은 이번 대회에서 빛나는 주연이었다. 대회 첫날 5언더파를 때려내며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력이 남은 노인이 어느 날 하루 보여준 깜짝 활약으로만 여겼다.

‘깜짝’은 다음날 ‘이변’이 됐다. ‘골프 황제’타이거 우즈도 강풍과 질긴 러프 앞에 무릎을 꿇고 짐을 싸면서 “배가 고프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했지만 이 노인은 오랜 친구 턴베리에서 사는 법을 알았다.

왓슨의 불꽃 샷은 3라운드에서도 계속됐다. 오버파가 속출하는 무빙데이에서 자신의 타수를 지켜내며 마침내 단독 선두로 나섰다.

통산 6번째 우승과 최고령 우승 등 골프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도전에 나선 왓슨은 4라운드 시작과 함께 무너졌다.

첫 세 홀에서 보기를 2개나 적어내며 선두 자리를 내줬다. 골프의 신(神)도 흔들릴 부담스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왓슨은 침착했다.

어떤 스코어에도 옆집 할아버지 같은 수더분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경쟁자에 비해 더욱 작아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로 바람과 장애물을 이용해가며 차근차근 게임을 풀어갔다. 세월이 알려준 인내(忍耐)의 의미를 알았다.

왓슨은 티샷이 흔들리면 쇼트 게임으로 파를 세이브했고, 퍼트가 말을 듣지 않아도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쓰러졌던 노인은 스스로 일어섰다.

17번홀(파5)에서 버디를 만들어내며 다시 선두로 나서는 저력을 보였다.

이제 72번째 마지막 홀. 갤러리들은 77년 잭 니클로스와의 명승부를 떠올리며 우승을 상상했다. 그날 보여줬던 18번 홀의 전설 같은 버디퍼트.

그러나 2009년 브리티시오픈의 신(神)은 해피 엔딩을 거부했다. 1타차로 앞선 왓슨의 두 번째 샷이 그린 중앙을 벗어났다. 그린 주변에 있던 아내 힐러리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왓슨은 퍼터로 핀을 노렸지만 세 번째 샷은 홀을 2.4m나 훌쩍 지나쳤다. 부담스런 거리. 그렇지만 이번 대회에서 자주 성공을 해왔던 퍼트였다.

그러나 그렇게도 완벽했던 왓슨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흔들렸다. 퍼터를 떠난 볼은 홀 오른쪽으로 밀리고 말았다. 결국 보기로 연장을 허용했다.

17번 홀부터 힘이 떨어져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베테랑은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태운 뒤의 재처럼 연장에서 쉽게 허물어져버렸다.

비록 싱크에 패해 우승컵을 품에 안지는 못했지만 왓슨은 이번 대회 진정한 영웅이다. 단지 연장에서 승리한 싱크가 우승컵의 주인이 됐을 뿐이다.

왓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내가 완성하지 못했다. 오늘의 실패가 내 장례식은 아니지 않는가. 싱크는 우승할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 내가 충분한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우등상을 받아든 장한 아들을 대하듯 온화한 목소리로 경기를 복기했고 동반자를 칭찬 했다.

“자신이 없다면 대서양을 건너오지도 않았다”는 왓슨은 클라렛 저그 대신 아내의 손을 잡고 턴베리를 떠났다. 갤러리와 전 세계 팬들은 그를 기립박수로 환송했다. 굿바이 톰 왓슨.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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