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보’에 지역 역사-전설 담는다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정부, 특색 살린 설계 주문
건설사들 사료 찾기 골몰

“고마나루 전설이 뭐야?”

4대강(江) 살리기 공사 가운데 금강 7공구(충남 공주지역)에 응찰한 중견 건설사 설계팀 김모 과장(38)은 발주처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받아온 입찰안내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보(洑) 설계와 관련된 입찰안내서에는 ‘예를 들어 금강과 연미산을 배경으로 한 처녀 곰과 나무꾼에 얽힌 고마나루 전설 등 공주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포함되도록 계획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 과장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디자인에 어느 정도 지역 특색을 가미하곤 하지만 입찰안내서에 구체적인 사례까지 적혀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역사와 신화를 사회간접자본(SOC) 설계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계 과정에 역사 교수나 향토사학자를 참여시켜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4대강에 건설되는 보들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별 역사나 전설 등 이야기가 담기는 디자인으로 설계된다. 국토해양부와 각 지방국토관리청 등 4대강 공사 턴키(설계 시공 일괄 입찰) 발주기관이 20일 공개한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4대강 보는 ‘스토리 랜드스케이프(Story Landscape·이야기가 담긴 경관)’ 형성이 가능한 형태로 설계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4대강에 건설되는 대표적인 보에 지역 이미지와 이야기를 담아 관광, 레저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업체 선정 과정에서 이를 설계 점수에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의 상당 부분이 물속에 잠기는 보의 특성상 지역별 특색을 완벽하게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물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만큼은 창의적인 디자인과 구조를 통해 지역의 이미지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제안한 이미지는 한강 이포보의 경우 도자기와 세종대왕의 창작품, 금강 부여보는 낙화암과 계백 장군, 영산강 승촌보는 생명의 땅 나주, 낙동강 강정보는 패션중심지 대구 등이다

9월 8일 설계 마감을 앞두고 새로운 과제를 떠안은 각 건설사 설계팀은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설계팀은 창의적인 지역 이미지를 발굴하기 위해 지역주민 여론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전문업체가 지역 주민 여론조사 결과와 향토사학자들의 조언 등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이를 설계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보 공사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인데 짧은 설계 시간에 외관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외국에는 도시의 명소에 이야기를 입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스토리 지향형’ 도시가 많이 있다. 덴마크의 오덴세 시는 내륙 지방이지만 8km의 운하가 있는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은 ‘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등으로 널리 알려진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이라는 점을 잘 살려 안데르센 박물관은 물론이고 19세기식 목조 주택, 풍차, 정원, 연못 등을 재현해 놓았다.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173km 정도 떨어진 바스 시는 훗날 리어 왕의 아버지가 된 블라더드가 작은 연못에 빠진 돼지들을 몰아내기 위해 물속에 들어갔다가 지긋지긋한 피부병으로부터 벗어나게 됐다는 전설을 이용해 ‘온천 도시’로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삼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환경 연구본부장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질이나 생태계 보전 문제를 해결한 뒤 문화나 테마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강을 발전시켜 왔다”며 “우리도 물의 역사를 보존하고 살려 후손에게 물려줄 만한 유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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