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아프간 미군 철수 아직 이르다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솔직히 말해보자. 누구나 미군이 주둔한 아프가니스탄에 와서는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미군이 여기 왜 있는 것인가. 요즘 누가 탈레반에 신경이나 쓰나. 알카에다는 이미 떠났지 않나. 그들이 돌아온다면, 그건 신이 크루즈 미사일을 만든 탓일 게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단정 짓기엔 왠지 개운치 않다. 특히 여기서 그레그 모텐슨을 만난 뒤론 더 그렇다. ‘세 잔의 차’란 책을 쓴 저자인 그는 최근 힌두쿠시 산맥 인근 아프간 마을에 여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배울 기회를 얻어 기뻐하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고서도 “이젠 미군이 떠날 때”라 말하긴 참으로 어렵다.

모텐슨의 삶은 과연 ‘테러와의 전쟁’이 지닌 본질이 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싸움은 이슬람 사회의 이념전쟁이다. 그 한 축엔 종교적 광신도들이 있다. 순교를 찬양하는 그들은 이슬람 사회를 고립시켜 근대화를 막고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빼앗고 있다. 반대편은 사회 발전을 도모하고 이슬람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이들이다. 어쩌면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진보의 싹을 키우는 발판일 수 있다. 변혁의 주체가 될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교식 날,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이 학교에 온 것도 이런 이유다. 모텐슨과 촌로들, 마을 아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통 복장을 입고 합참의장을 맞이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그가, 탈레반 표현법을 따르자면, 미국 ‘전쟁 수괴(warrior chief)’란 사실은 전혀 몰랐겠지만.

모텐슨에 따르면 그는 지금까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179개의 학교를 세웠다. 그는 “학교는 어린 세대에게 더 넓은 세계관을 배울 기회를 준다”면서 “특히 극단적인 종교 탓에 고립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운 소녀들은 장래에 그들의 자녀가 투사나 폭도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교육은 현재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읽고 쓰기를 배운 아이들은 당장 자기 어머니를 바꿔놓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고기나 야채를 쌌던 신문을 읽어주면, 어머니들은 정치 현실이나 여성이 박해받는 처지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습니다.”

탈레반이 2007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약 1000개의 학교(80%는 여학교)를 없앤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는 그들의 이념에 방해물이다. 탈레반은 학교보다 이슬람 사원을 선호한다. 실제로 탈레반 전사는 문맹률 높은 하위층에서 많이 나온다.

학교에 들른 김에 몇몇 소녀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봤다. 신이 난 아이들은 교사와 의사를 외쳤다. 두 직업은 여기서 그들이 만나는 유일한 ‘교육받은’ 역할모델이다. 모텐슨과 미 국무부가 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이곳의 유일한 교육기관은 ‘이슬람 사원’뿐이었다.

과거 모텐슨은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군사 활동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군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그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값진 체험을 얻었다”면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현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도와주는 법을 깨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략적 관점만 놓고 본다면, 여전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장 이곳에 와서 학교에 등교한 조그만 소녀들을 만나보라. 아이들이 마치 인형이라도 된 듯 합참의장이 나눠준 공책을 꼭 안은 모습을 보라. 그걸 본 뒤에도 “당장 떠나자”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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