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덕제]노조, 기업성장-복지에 초점을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KT노조가 94.9%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하겠다고 17일 결의했다. 또 현대자동차의 정비위원회 소속 근로자들이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했다. 올해 3월 이후 모두 12개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는데, 특히 올해 4월과 최근에 탈퇴한 서울도시철도노조와 KT노조는 조합원이 각각 5800명과 3만 명에 이른다. 민주노총의 근간을 이루는 대기업 노조에서도 탈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치운동 일삼는 민주노총 외면

단위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민주노총은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 노동해방을 외치며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제 민주세력과의 연대 강화’를 규약의 첫째로 제시할 만큼 정치운동과 통일운동을 중요한 목표로 들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운동에 치중하면 당연히 온갖 정치·사회적 쟁점에 관해 발언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정부와 충돌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런 충돌을 대규모 군중 동원으로 돌파하려다 보니 산하 조합에 조합원 동원을 요구하게 됐고 이에 따라 일반 기업의 노조와 마찰을 빚어 왔다. 여기에 장기화하는 세계적 불황으로 단위노조 조합원의 욕구와 민주노총 노선의 마찰이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시장경제의 순조로운 성장과 기업의 성장을 통한 근로자 복지 실현이라는 운동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조건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라는 말이 아니라 기업 경영자에 대한 건전한 감시자와 조언자, 기업 내의 야당으로 활동하여 기업의 투자와 기술개발을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운동을 위한 조직체계를 현실의 조합원 요구 수용에 적합하도록 바꿔야 한다. 산업별 노조를 이상으로 여기지 말고, 규모와 생산 공정이 다른 기업의 특성과 생산직만이 아닌 사무 전문직 서비스직 등 새로운 경제여건에서 수적으로 증가하고 영향력도 커지는 다양한 직업의 근로자 요구를 수렴하는 데 적합한 조직으로 조직체계를 다양화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화하는 경제여건에서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 고용안정을 위한 운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급변하는 기술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합원의 지식과 기능 향상을 주요 과제로 삼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전-생존 위해 조직체계 바꿔야

넷째,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듯이, 대규모 노조 또한 사회와 근로자 전체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기존 조합원의 근로조건 향상만이 아니라 장래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그에 맞는 노사관계를 구축함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장래의 주된 일자리 공급원이 될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 근로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가혹하게 깎거나, 대기업 조합원의 고용보호를 위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운동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반체제 성향의 정치운동에 주력해 온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는 이런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과 노동자들의 생활 향상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노동운동은 이 길 외에는 없음을 확신하고 대기업 노조 간부들이 이 전환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시대가 변하는데 기업이 변하지 않는다면 발전과 생존을 기대하기 힘들다. 노조라고 해서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박덕제 한국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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