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성인]‘사교육 줄이기’ 고교-대학이 앞장서야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정부가 30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학원과의 전쟁을 선포한 듯하다. 공교육은 무너진 지 오래됐다.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공약은 선거철만 되면 나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혹시 이번 정부에서는 달라질까 기대를 해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방법의 개선과 대학 입시제도의 개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고등학교 교육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2002년에 연구교수로 미국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 학부모로서 미국 고등학교 교사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수학 교사의 말에 의하면 한국학생은 수학이 아니라 계산을 잘한다고 한다. 논리적인 사고로 수학을 대하지 않고 곱셈, 나눗셈, 삼각함수 값에 대한 계산 능력이 좋아서 눈에 익은 문제는 잘 푼다고 했다. 생각하는 수학이 아니고 계산에 바탕을 둔 문제풀이 위주로 수학을 배우므로 스스로 생각하면서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은 부족해진다. 실생활과 관련된 수학을 배우면서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미국에서는 영어 시간에 교재가 따로 없고 학년별로 지정도서가 있어 매시간 정해진 분량을 미리 읽고 그 내용에 대해서 토론한다. 논리적인 사고능력을 기르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습관이 생기는 셈이다. 한 학기동안 보통 4권 이상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한다. 교사의 말에 의하면 많이 읽고 정확히 빨리 이해하는 일이 모든 교육의 기본이라고 한다. 과학 시간에는 매주 다양한 과학 실험을 한다. 독창적 실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정한 역할을 각자 수행한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결과를 서로 토의하고 자기 혼자 참고 서적이나 인터넷으로 찾은 이론과의 차이점을 기술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교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고 질문에 답해주면 된다. 담당 교사는 관찰 결과를 성적으로 부여하고 추천서를 통해 대학 진학 시에 입학 자료로 제출한다. 읽기와 토론과 실험 위주의 교육, 그리고 시험이 아닌 학습 태도와 관찰에 의한 평가로 성적을 부여하므로 미국에서는 사교육이 발붙이기 힘들다. 통합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서울대의 논술 성적을 보면 군 지역 농촌 학생이 도시 학생보다 논술 성적이 더 좋다. 대학에서 보면 사교육에 의존하여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전공과목을 배우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이 내려가고 일반고에서 혼자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학생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성적이 좋아진다.

두 번째로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창의력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우수한 학생을 고등학교에서 교육하고 그런 학생을 선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시험 결과에 의해 입학이 좌우된다면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는다. 지역할당제를 하면 정원이 그만큼 줄어든다. 입학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으니 음성적인 사교육이 더욱 성행할 것이다.

대학은 사교육에 길든 학생을 선발하기보다는 창의력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는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은 고등학교 교육 결과를 입학전형에 활용하고, 한편으로는 대학마다 특색 있는 본고사로 원하는 학생을 선발해서 훌륭한 인재로 키워야 한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길러진 학생은 어디에 가든 밝은 장래가 보장될 것이다.

조성인 서울대 바이오시스템· 소재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