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걷기 예찬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여러 주일, 여러 달, 아니 사실상 여러 해 동안 상점이나 사무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지내는 내 이웃 사람들의 참을성, 혹은 정신적 무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한가로운 산책의 기쁨과 깨달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걷기의 즐거움에 무감각하다. 일상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행위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의식하지 않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의 사회학 교수이자 ‘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는 쉽게 간과해 온 걷기의 의미를 세밀하고도 감성적인 산문으로 풀어냈다.

이 책에 따르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지평을 걷거나 도시에서 걷거나 고유한 리듬과 맛이 있다. 걷기를 정신적인 순회, 거듭나는 계기로 삼는 것도 가능하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얼마나 큰 특권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걷기는 몸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운다. 걷기를 통해 전신 감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걷고 난 뒤의 허기와 달콤함은 별것 아닌 음식조차 미식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저자는 귀스타브 루의 말을 인용해 온다. “극도의 목마름을 통해서 그대는 비로소 잎사귀 밑에 가려 있던 딸기의 맛을 알고 그대 마음속의 극단한 두려움을 통해서 비로소 교회와 그 서늘한 그늘을 안다. 더할 수 없는 피로와 졸음에 이르러서야 그대는 비로소 팔월 모래 속으로 가뭇없이 잦아드는 파도를 안다.”

걷기를 통한 배움과 사유도 가능하다. 저자는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걷기를 통해 자유로운 사색, 추리, 논증을 이뤄냈다. 키르케고르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 이렇게 적었다.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극단의 육체적 탄력과 충만,”

걷는 동안의 침묵과 고독, 노래 부르기도 고유한 깨달음과 기쁨을 안겨준다. 걷기가 반드시 먼 곳을 떠도는 도보 여행으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걷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선호하는 코스를 중심으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일상적인 경험이 묻어 있는 수많은 길을 거니는 것은 기억의 뜰을 걷는 것과도 같다.

초현실주의자들처럼 표류하듯이 도시의 골목을 이리저리 흘러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한가롭게 거니는 것이야말로 도시에서 걷는 진정한 기술의 이름이다… 한가하게 거니는 산책자는 딜레탕트 사회학자인 동시에 소설가, 신문기자, 정치가, 일화 수집가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관찰자란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왕자”임을 기억하고 행인들 사이를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수없이 많은 구경거리를 만나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

물론 걷기가 수행의 경지에 오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스정교회의 수도승들은 그리스 북부 아토스 산 지역에서 잠잘 곳도 따로 없이 걷는다. 아시아의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순례를 중시한다. 티베트의 경우 공기가 희박해 걷는 리듬이 하나의 수행에 가까울 정도로 느려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경우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이라며, 길 위에서 삶의 불안, 고뇌를 치료하고 새로운 영성을 발견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걷는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책에 언급된 수많은 철학자와 문인, 순례자들처럼 지금 당장 첫걸음을 떼 봐도 좋을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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