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부서 써내면 컴퓨터로 자동 배치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 KT, 혁신 인사시스템 가동

“더 투명하게… 더 자유롭게…”
기업들 인사에 시장원리 도입

인력 수급이 힘들어서,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 때문에, 부장 눈치가 보여서….

부서 한번 옮기려면 마치 회사라도 옮기는 것처럼 힘들었던 인사이동. 하지만 점차 옛날 얘기로 변해가고 있다. 기업들이 인사 시스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의 자유로운 인사이동을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특허까지 출원한 KT의 인사시스템

KT는 최근 새 인사시스템인 ‘HR 마켓플레이스’의 운영을 시작했다. 상무급 이하 모든 직원에게 본인이 일하고 싶은 부서에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인력이 필요한 부서는 사내 전산망에 인력 소요를 밝히고, 개별 직원은 이를 본 뒤 해당 부서에 지원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자동으로 처리되므로 지원자가 소속 부서장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새 시스템의 이름 그대로 KT 내부에 거대한 ‘인력 시장(마켓플레이스)’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위해서는 복잡한 논리 구조와 수학적 계산이 필수다. KT는 이를 정보기술(IT)로 해결했다. ‘알고리즘’(컴퓨터 연산법)을 개발해 모든 정보를 계량화하고 자동으로 인사 배치가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KT는 해당 기술의 특허도 출원했다.

이 방식에 따르면 우선 각 부서가 선발하려는 직원의 요건을 전산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이후 개별 직원이 이 요건을 보고 배치희망 부서 순위를 정한다. 시스템은 부서별 요건에 어울리는 지원자를 자동으로 파악해 각 부서에 할당한다. 1지망 지원자부터 해당 부서에 배치하고, 필요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차순위 지원자를 충원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KT의 경우 직원이 수만 명에 이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늘어나는 인사 실험

KT 외에도 이런 ‘인사 실험’을 하는 기업들이 있다. LG CNS에는 매년 1, 2회 열리는 ‘커리어 디벨롭먼트 페어’라는 인사 제도가 있다. 개별 직원이 선호 부서를 적어내면 인재개발팀이 보안을 유지한 채 해당 부서로의 이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 희망 부서에서 최종 승인하기 전에는 지원자의 소속 부서에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매년 늘고 있다.

현대카드도 2007년부터 ‘커리어마켓’이라는 독특한 인사 제도를 운영한다. 직원 개개인이 자신의 경력을 사내 전산망에 올려 스스로를 ‘마케팅’하고, 각 부서도 필요한 직원의 요건을 전산망에 올려 개별 직원의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프로 스포츠의 ‘드래프트’ 제도와 유사하다.

○ 기업의 경쟁력은 내부 직원

기업들이 이처럼 혁신적인 인사 실험을 벌이는 이유는 직원의 만족도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LG CNS의 인사시스템은 직원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유능한 내부 직원을 선호 부서에 배치해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부 경력직 채용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KT는 새 시스템을 통해 자발적인 경쟁을 기대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KTF와의 합병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능력이 부족한 직원은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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