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 잠자고 있다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최근 中企-주택담보 대출 억제로 돈쓸 곳 못찾아
개인도 예금에 치중… 시중자금 금융권만 맴돌아

은행들이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종용하던 압박을 거둬들이고 부동산담보대출을 억제하면서 마땅히 돈을 운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당분간 적극적인 대출 운용이 어렵다고 보고 특판예금 등 고금리 자금조달을 자제해 수익성에 치중할 방침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외환 등 6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5일 기준 309조4402억 원으로 6월 말보다 2조902억 원 줄었다. 이들 은행의 중기대출은 5월 2조2998억 원 증가에서 6월 4792억 원 감소로 돌아선 뒤 두 달 연속 줄어들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도 지난달 1조8415억 원이 늘었으나 7월에는 보름 동안 7406억 원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융 당국이 중소기업에 대한 의무대출 부담을 완화한 데다 자금 수요도 적기 때문에 중기 대출이 줄고 있는 것. 주택담보대출도 최근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는 등 규제를 강화해 대출이 막히고 있다.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 조달을 하고 있어 이미 상반기부터 대출이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은행들이 대출할 곳이 없어지면서 자금이 실물로 가지 못하고 금융권에서만 맴돌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한국은행이 시중에 공급하는 ‘본원통화’와 단기 유동성 지표인 ‘협의통화(M1)’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은행들이 기업이나 가계에 자금을 대출해야 생기는 ‘광의통화(M2)’의 증가율은 지난해 5월 이후 13개월 연속 줄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자금 수요가 많지 않아 생긴 것으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극심했던 ‘돈맥 경화’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성기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확보했고 중소기업도 만기연장 등 지원을 받아 급한 불을 끈 상태로 단기적 자금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자금을 굴릴 곳이 줄어들자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은행 수익의 발목을 잡아온 ‘고금리 조달’을 최대한 자제할 방침이다. 김태우 하나은행 자금부장은 “자금 운용이 어려워지다 보면 은행들이 수신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도 단기 상품에 자금을 묶어둔 채 투자를 꺼리고 있다. 6개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5일 현재 289조7188억 원으로 6월 말보다 5조5511억 원 급증했다. 정기예금의 상당부분이 만기 6개월 미만의 단기성 자금이다. 대표적인 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도 이달 15일까지 5조5016억 원이 유입됐으며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1조3161억 원 늘었다.

앞으로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정상화되는 데는 실물경제 회복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 국장은 “자금 수요가 크지 않아 은행들이 자금을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태”라며 “하반기 경기가 어느 정도 속도로 회복되느냐에 따라 투자 수요와 대출 증가세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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