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의장, 직권상정 굳혀가나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미디어관계법의 국회 본회의 직권상정 문제를 놓고 고심에 잠긴 김형오 국회의장. 연합뉴스
미디어관계법의 국회 본회의 직권상정 문제를 놓고 고심에 잠긴 김형오 국회의장. 연합뉴스
“네잎 클로버 찾는다고 화단 망쳐” “의원 개인 찬반과 무관”

“미디어법이 민생법안도 아닌데…” 국회 마비 계속되면 결단 시사

김형오 국회의장이 미디어관계법을 직권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결심을 굳혀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19일 새벽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글을 올렸다. 김 의장은 ‘네 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화단 다 망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협상하고 타협하면 못할 게 없다”면서 여야에 마지막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방송법이 이렇게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법인가”라며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쪽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고 이 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법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또 “의장인 제가 아무리 종용해도 협상도 타협도 하지 않고 아예 대화조차 않으려 한다”며 “10년 후, 아니 5년 후 사람들은 이 법으로 그때 이렇게 치고받고 싸웠다고 하면 아마 ‘참 할 일 없는 국회다’라는 소리를 분명히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의 측근들은 이와 관련해 “미디어법 때문에 국회 기능이 마비된 현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 의장은 주말에 모든 공식, 비공식 일정을 물리친 채 공관에 머물며 각계 인사들과 통화하면서 직권 상정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미디어법의 직권상정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꽤 오래전부터 가져온 것 같다. 특히 3월 2일 자신의 중재에 따라 여야가 미디어법 여론 수렴을 한 뒤 6월 국회에서 표결 처리키로 합의했던 것에 대해 상당한 책임감을 느껴 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의장이 ‘여야가 국민 앞에 약속을 해놓고 이마저 지키지 못하면 정치의 꼴이 뭐가 되느냐’며 직권 상정 문제로 괴로워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어떻게 하든 이번에는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국회가 사실상 기능 정지 상황에 놓인 지 오래됐다. 의장으로서 국회 정상화 차원에서 중대 결심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나라당의 20일 본회의 표결처리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의원 개인의 찬반 여부는 의장의 직권 상정 결정과 관련이 없다”며 “의장은 여야의 협상 상황과 본인의 판단을 근거로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볼 때 당초 20일 또는 21일로 예상됐던 김 의장의 직권 상정은 금주 중반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권 상정은 김 의장이 결심을 해야 하지만 정작 그 시점은 한나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통 직권 상정은 여당이 본회의장과 의장석을 완전히 점거하고 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요구하는 절차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이날 언급이 야당에 대한 최소한의 협상 성의 표시와 시한 연장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만큼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 역시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또한 내년 6월 임기가 종료되는 김 의장에게는 미디어법 처리가 마지막 직권 상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직권 상정을 하고서도 법안이 부결될 경우 여당 지도부뿐 아니라 김 의장 역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 국회의장 직을 마치고 한나라당으로 돌아간 이후의 정치 일정까지 감안해야 하는 김 의장으로선 결단의 시간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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